누런 서류 봉투를 들고 씩씩거리며 KT 고객 민원센터를 김태풍씨.

그는 앉자마자 "아따~뭐 이리 해오라는 서류가 많노. 후딱 처리해 주시오"라며 호통을 쳤다.

김씨는 아내가 운영하는 가게의 명의변경을 위해 이곳을 찾았다.

"뭐라? 사업자와 세대주가 달라 114 전화번호 안내 서비스를 못해준다고라."

그는 언성을 높이기 시작했다.

"장사하는 사람한테 114 전화번호가 생명이여,생명."

김씨의 반응에 난감해 하는 KT 창구 직원 홍명희씨.

그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을까.

15일 오전 충남 아산시 KT 도고 수련관.

70여 명의 KT 직원과 관계자들이 성난 고객을 진정시킬 홍씨의 대응을 흥미진지하게 주시하고 있다.

고객가치혁신(CVI:Customer Value Innovation) 실천을 위한 'KT CVI 스타 워크숍' 현장에서다.

그들이 함께 본 것은 '김태풍씨 KT에 가다'란 동영상.

65명이 14개 팀으로 나눠 각자 제작한 영화의 시연회를 열고 있었다.

영화 속 홍씨는 해결책을 생각해 냈다.

일단 먼저 김씨에게 114 안내 서비스가 가능하도록 조치를 해 준 뒤 일주일 내에 못 갖춘 서류를 가져오도록 한 것.

그제서야 마음이 풀어진 김씨는 "아까는 본의 아니게 화를 냈다"며 사과했다.

이에 홍씨는 "김태풍씨. 대리운전하신다고요. 불편한 점은 없으세요?"라며 말을 건넸다.

그의 질문에 김씨는 그간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거시기. 술 취한 사람들이 대리운전 불러놓고 졸아 버리면 참말로 난감하지라. 근디 그런 경우가 허다하단께."

홍씨는 그에게 대리운전자 전용 서비스를 소개했다.

위치추적은 물론 화상으로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휴대폰.

"아니 그런게 있었으면 진작에 알려 줄 것이지."

동영상은 흡족해 하는 김태풍씨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며 끝났다.

이 동영상 출연진은 모두 KT 직원.

전체 120개 팀 지원자 중 예선전을 통과한 정예 멤버다.

지난해 12월 KT는 '원더풀 라이프 파트너 KT'라는 비전을 선포했다.

이 비전 실천의 주된 방법인 CVI는 단순한 고객 만족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 고객의 숨겨진 욕구까지 찾아내는 적극적인 감성 마케팅 기법이다.

KT는 비전이 비전에만 그치지 않는 방법을 고심했다.

이에 도입한 기법이 영화,연극 등 '롤 플레이(역할 바꾸기)'를 통해 고객의 입장에서 보는 것.

KT 관계자는 "최근 경영의 핵심은 '사람 읽기'"라며 "직원들이 고객을 읽으려면 고객의 입장에서 그들의 감성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공의 경험이 성공을 부르는 효과도 노렸다.

'김태풍씨' 역할을 한 최희준 대리(전남본부 강산지점)는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경험은 진공청소기와 같은 매력이 있다"며 "처음엔 소극적이던 사람들도 나중엔 빠져들게 된다"고 전했다.

그는 특히 "이런 경험은 CVI의 실천 방법론을 몸에 입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고 설명했다.

서울 본사의 네트워크 부문에서 근무하는 김금애 대리도 "이틀 만에 동영상 하나를 제작하다보니 무척 힘들었지만 나중에 시연회를 보고나니 마치 유명인이 된 것처럼 뿌듯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또 "조직 혁신을 이끄는 새로운 기법을 과감히 실천에 옮긴 경영진의 추진력을 높이 평가한다"며 "KT라는 방대한 조직에 엄청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고 평가했다.

류성희 혁신기획실 부장은 "주입식 비전 교육은 한계가 있다"며 "롤 플레이 교육은 참여도와 만족도 측면에서 상당히 높은 편"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이번 워크숍에 대한 참여자들의 만족도가 높아 1차 '핵폭발'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라며 향후 2,3차 폭발이 연쇄적으로 조직 전체의 변화를 주도할 것으로 기대했다.

이번 워크숍을 주도한 류 부장은 "업무 이외의 부분에서 얻은 문제해결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업무에서도 적용하는 게 목표"라며 "모든 사람이 자기 안에 있는 창의성을 일깨우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KT 관계자는 "이번 워크숍 내용은 사실 모든 조직에서 강조하던 부분"이라며 "하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몸으로 느끼는 것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비전은 선포하는 것보다 조직 내에 이를 퍼뜨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아산=성선화 기자 d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