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일처럼 시공능력 순위가 60위권 내에 있는 건설회사가 쓰러진 것은 2000년 동아건설(당시 7위) 이후 7년 만의 일이다.

신일이 단기 유동성 부족 때문에 흑자도산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 건설사의 유동성 문제가 외환위기 때처럼 심각하다는 얘기다.

실제 부산 대구 광주 등 지방시장에서 미분양 아파트 누적에 발이 묶여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는 중견업체들이 상당수에 달한다.

특히 지방 주택시장은 분양가 상한제 등 부동산 규제책이 시행되는 올 9월 이후엔 상황이 더 악화될 수밖에 없어 '부도 도미노'가 현실화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강남 집값 잡으려다 지방시장 유탄


중견 주택업체들이 위기상황에 처하게 된 것은 시장 수요를 무시한 건설사의 '밀어내기식' 공급과 정부의 획일적인 규제가 빚은 합작품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진단이다.

특히 강남을 비롯한 수도권 집값을 잡으려던 초강경 대책들이 지방권에도 거의 획일적으로 적용된 것이 무리수였다는 지적이다.

한 전문가는 "부산·대구·광주 등 지방권은 인구 감소와 높은 주택보급률 등으로 수요층이 엷은 데도 강남 집값 잡으려고 정부가 쏟아낸 보유세·양도세 및 주택담보대출 강화 등의 규제가 예외없이 적용되는 바람에 실수요마저 꽁꽁 얼어붙었다"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3·30대책에 포함된 DTI(총부채상환비율) 규제를 지방시장에 적용한 결과 미분양이 급증하던 차에 중도금 대출 길까지 막혀 시장이 무너지는 결과로 이어졌다"며 "이는 병원에 누워있던 환자의 산소호흡기를 떼어낸 꼴"이라며 고 불만을 터뜨렸다.

◆밀어내기식 분양,공급과잉 자초


주택업체들이 '일단 짓고 보자'는 식으로 물량을 쏟아낸 것도 문제다.

정부의 주택종합계획을 보면 연간 50만가구 중 수도권이 30만가구,지방권이 20만가구로 대략 6 대 4의 비율이다.

하지만 실제 주택공급 실적을 보면 지방권 비중은 △2003년 47.8% △2004년 55.7% △2005년 57.3% △2006년 63.3%로 해마다 급증세를 이어왔다.

올해도 지난 5월 말까지 지방권 비중은 49.8%로 여전히 높다.

미분양 아파트의 지방권 비중 역시 올해 95.2%에 달해 2004년에 비해 18%포인트나 높은 상태다.

외환위기 이후 굳어진 아파트 사업의 시행·시공 분리관행 역시 구조적인 문제점으로 꼽힌다.

외환위기 이후 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낮추라는 정부의 엄명에 대형·중견업체 가릴 것 없이 자체 택지 확보를 포기해야 했고 이에따라 인력이나 자금력이 열악한 영세 시행사들이 대거 등장했다.

이는 택지확보 과열경쟁을 불러 곧바로 고가 분양으로 이어지면서 미분양 아파트 양산을 부추겼다.

실제로 1998년 말 3017개였던 주택건설 등록업체(시행사 포함)는 매년 급증세를 보이면서 지난 5월 말 현재 7064개로 10년 새 2배 이상 늘어난 상태다.

이들 가운데 90% 이상은 시공 능력이 없는 영세 시행사로 파악되고 있다.

◆금융규제 선별완화해 줘야


전문가들은 투기과열지구 해제 정도의 수준을 넘는 해법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충고한다.

무엇보다 지방권은 주택담보대출이나 중도금 대출 등을 일부 완화하는 등 금융규제를 탄력적으로 운용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부동산114 김희선 전무는 "지방권 수요자들의 경우 기존주택 가격이 워낙 낮은 데다 팔기도 어려워 새 아파트에 입주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며 "중도금대출이나 담보대출 규제 완화가 가장 신속하고 효과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대한주택건설협회 등 건설관련단체들도 최근 정부에 △지방투기과열지구 조기 해제 △지방권 미분양 아파트 매입 시 현행 40%의 총부채상환비율 및 주택담보대출 인정비율(LTV)을 60%로 완화 △기반시설부담금 경감 △주택사업용 보유토지에 대한 종부세 등 보유세 완화 등을 건의해 수용 여부가 주목된다.

주택업계도 자구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건설산업 연구원 김현아 연구위원은 "대형 건설업체들은 지방시장이 어렵다는 경고가 나온 2004년부터 지방 주택부문 비중을 줄였지만 중견업체들은 그렇지 못했다"며 "지금이라도 기술력 제고,사업 다각화 등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충고했다.

또다른 전문가는 "은행 등 제1금융권과 달리 저축은행들은 주택 프로젝트파이낸싱(PF)대출이 여전히 늘고 있다"면서 "미분양이 누적된 지역은 대출심사를 강화해 간접적으로 물량조절에 나서는 것도 방법"이라고 말했다.

강황식 기자 his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