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빠듯한 나라살림을 꾸려가면서도 예산편성을 제대로 하지 못해 예산이 중복편성되고 모자라 다른 예산을 끌어다 쓰는 사례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사시에 대비한 예비비의 경우 명확한 집행 지침이 없어 각 부처가 인력을 늘리는 데 경쟁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2006년 예산결산안 분석자료에서 상임위별 재정사업을 85개로 분류,△예산편성 당시 계획 미비로 집행률이 저조한 사업 △예산편성 오류로 예비비를 사용하거나 다른 예산을 전용하는 사업 △사업의 유사 중복성으로 인한 예산낭비 우려 사업 등을 가려내 문제점을 비판했다.

◆기본 계획도 없이 예산편성


해양수산부의 '어촌·어항 관광산업'의 경우 지자체의 기본계획도 수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중앙부처가 예산을 편성,2003년 이후 예산집행률이 만성적으로 부진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이 사업엔 지난해 426억9800만원이 투입됐지만 단위 사업별로 집행률은 40∼60%에 불과했다.

출연금 형태로 이뤄지는 △호남고속철도 건설사업(7.6%) △과학연구단지 육성사업(0.3%) 집행률도 크게 떨어졌다.

남북협력기금도 경상사업 계획 대비 집행률이 최근 5년간 62%에 불과해 쓸데없는 사업을 줄이고 예산을 재편성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국민기초생활보장 사업은 수요예측이 잘못돼 예산 전용(專用)등의 변칙운용이 있었던 것으로 지적됐다.

기초생계비 지원사업엔 지난해 2조3412억원이 편성됐으나 이후 추가 재정소요가 발생,예비비와 타 회계에서 1288억원을 끌어다 썼다.

의료급여도 의료기관들에 줄 돈 6484억원이 없어 다음해로 지급을 연기했다.

여성가족부 소관의 '저소득 가정 보육지원사업'은 지원대상을 너무 작게 잡아 예산부족으로 790억원의 예비비를 끌어다 쓰고도 모자라 타 예산 전용을 통해 202억원을 더 증액했다.

교육부가 벌이고 있는 6개 '대학재정지원 관련 사업'과 국가균형발전특별회계상의 대학지원 3개 사업들은 '대학 경쟁력 강화'라는 유사한 정책목표 아래 예산낭비 가능성이 지적됐다.

여러 부처가 공동 추진 중인 '농산어촌 지역 개발사업'은 종합적인 추진체계 없이 농림부 행정자치부 해양수산부 건설교통부 환경부 산림청으로 분산 집행되다 보니 사업들이 연계되지 못하고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인력충원에 예비비 사용?

예비비 쓰임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해 예비비 규모는 2조6823억원이었다.

이 가운데 일반예비비는 용도가 제한돼 있지 않아 '부처 인력 늘리기용'으로 부적절하게 사용됐다는 지적을 받았다.

목적예비비는 재해대책 등으로 용도가 한정돼 있다.

국세청은 세무서 신설,양도소득세 실거래가 과세를 위한 인력증원 등 직제개정 관련 비용으로 131억원을 예비비에서 끌어다 썼다.

노동부도 신규 인력 인건비와 청사를 짓는 데 170억원을 사용했다.

기획예산처는 사회서비스향상기획단을 만드는 데 20억8300만원을 갖다 썼다.

정책처는 "부처들은 조직개편이나 인력증원을 위한 예비비 사용을 자제하고 중장기적인 조직 및 인력운영 계획을 통해 필요한 경우 이를 본예산에 반영토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책처는 또 "국가보훈처는 보훈보상금 부족분으로 814억원,여성가족부는 저소득가정 보육지원 예산부족으로 790억원을 예비비로 썼는데 앞으로는 보상인원이나 지원대상을 정확히 파악해 이를 본예산에 반영토록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정책처는 아울러 2006년 예비비 예산 299억원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홍보 및 국민여론 수렴,협상팀 운용 예산으로 사용된 데 대해 FTA와 같이 중요한 협정을 관련 예산 확보 없이 예비비를 통해 추진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박수진 기자 notwom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