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수의 조합원이 반대한다. 조합원의 여론은 한·미 FTA 저지 투쟁이라는 정치파업의 의미와 목적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 원만한 고용안정,권익 쟁취에 관심을 두고 있다."

10여년간 현대차 울산공장에서 대의원 등 노조 간부로 활동해온 김재근 전 대의원 대표는 17일 이같이 강조했다.

김 전 대표는 1987년 현대차 노조 설립 후 10대까지 대의원 활동을 해왔고 2,4,8,9대에는 대의원 대표로,2002년부터 2004년까지는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울산 북구의회 부의장까지 지내기도 한 핵심 노조원이었다.

그의 변신은 최근 현대차 노조 내에 불고 있는 정치파업 거부 운동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일반 조합원은 물론 전·현직 대의원 등 중간 간부들로까지 정치파업 거부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현장 조합원들이 중간 간부의 변화를 이끈다고 볼 수 있다.

또 노조 내 동호회·향우회 멤버와 신노동연합(신노련) 등 보수 온건 노선을 걷는 단체들도 대자보와 유인물,노조 홈페이지 등을 통해 정치파업을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이 같은 움직임은 1997년 노조 설립 이래 매우 이례적인 현상으로 지금까지 조합원들로부터 큰 저항 없이 파업을 벌여온 현대차 노조 지도부에 큰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확산되는 파업 거부 운동

김창곤 신노련 의장은 "정치파업을 강행하지 말자는 게 현장 조합원들의 대체적인 생각"이라며 "파업 반대를 호소하는 유인물과 대자보에 대한 조합원들의 호응이 예상외로 높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또 한 노조 대의원은 "조합원이 정치파업에 부담을 느끼고 있고 국민 여론이 따갑다"며 "이번 투쟁계획을 변경하지 않을 경우 노조 지도부는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조합원들은 정치파업에 상당한 부담을 안고 있고 친구들조차 손가락질하고 있다"며 "명분과 실리가 없는 정치파업을 찬반투표도 없이 강행하려는 금속노조 지도부에 대한 조합원들의 반감도 크다"고 말했다.

일선 조합원들의 파업 반대 지지도 확산되고 있다.

엔진4부의 한 조합원은 "이번 파업 반대 운동은 과거와는 다르게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며 "현장 조합원들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의장1부 소속 노조원은 "우리의 생계 수단인 회사가 무너진다면 투쟁할 상대도 없어진다"며 합리적 노동운동을 촉구했다.

회사 측 관계자는 "이번에도 금속노조 지도부가 주도적으로 파업을 밀어붙이다 조합원들의 반발에 부딪친 것"이라며 "조합원들의 반발이 예상외로 거세기 때문에 금속노조의 파업 계획은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15일에는 1공장 의장1부의 일부 조·반장 조합원이 파업 반대 서명운동을 벌이려다 반대파의 저지로 중단됐고 3공장 식당 게시판에는 정치파업을 비난하는 내용의 대자보가 대의원의 이름으로 한때 붙여졌다가 일부 현장 조합원이 밤중에 몰래 떼어내기도 했다.

노조 규약에는 대의원이 서명한 대자보는 서명 대의원의 허락없이 뗄 수 없도록 돼 있다.

현대차 노조 지도부가 오는 21~22일 확대운영위원회를 열어 파업 여부를 결정하기로 한 것도 반기를 드는 현장 조합원들의 정서를 반영한 것이다.

◆시민들도 "좌시하지 않겠다"

울산 시민들도 이번에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반응이다.

140여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행복도시 울산만들기 범시민협의회(행울협)는 17일 현대차 노조의 불법 정치파업이 회사와 지역·국가경제에 엄청난 타격을 줄 것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공동 저지에 나서기로 했다.

행울협은 노조가 금속노조의 총파업 지침에 동참하려 할 경우 대시민 거리홍보에 나서 노조의 부당함을 알리고 회사 앞에서 피켓시위를 벌일 계획이다.

또 시민 수만명이 집결하는 대규모 궐기대회도 갖기로 했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울산=하인식 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