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현장이 달라지고 있다] (5) 산별교섭이 최대복병‥상.하급 노조간 충돌ㆍ갈등만 갈수록 증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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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갑득 금속노조 위원장은 지난달 말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대의원과의 간담회에서 현대차의 단체협약 시기를 내년으로 1년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야 금속노조의 단결된 힘을 이룰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에 대해 현대차지부는 올해도 협상을 하고 내년에도 협상을 하겠다며 기존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지부가 상위단체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은 셈이다.
산별노조 체제로 전환되면서 조직 내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노조지부에선 본조(산별상급단체)의 방침에 반발하고,본조 내부에선 강온파끼리 부딪치는 식이다.
이 때문에 노동현장이 안정을 찾기 위해선 산별노조 내 갈등부터 정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지난해 산별노조로 전환한 현대차 등 완성차 4사 지부는 금속노조 본조와 마찰을 빚고 있다.
지부와 지회는 지휘 체계상 본조인 금속노조의 지침을 따라야 한다.
하지만 지부(지회)마다 기존에 누리던 기득권을 포기하지 않으며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끝없는 주도권 싸움
최근 금속노조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저지 투쟁을 찬반투표 없이 강행하겠다고 발표한 것에 대해 현대차 등 자동차 4사 노조지부장이 긴급회동을 갖고 자체 대응책을 모색한 것이 대표적인 상·하위 노조단체간 충돌 사례다.
그들은 금속노조의 결정에 공식적으로 반기를 들지는 않았지만 자동차 4사의 상황에 맞게 의견을 개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강온파 간 대립도 금속노조에 대한 사용자의 반감을 늘리는 요인이다.
본조는 본조대로,지부는 지부대로 강경파와 온건파 간 대립이 극심한 상황이다.
금속노조가 찬반투표 없이 한·미 FTA 저지 파업 강행을 결정한 것도 강경파의 입김 때문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사용자들이 산별교섭을 기피하는 것도 이러한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
현대차 관계자는 "기업별 교섭 때도 노조의 파업으로 골머리를 앓아왔는데 산별교섭에 동참할 경우 더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사용자들 기존 단협에 난색
사용자들이 산별교섭을 꺼리는 또 다른 이유는 기존에 만들어진 단협 내용 때문이다.
주로 중소업체 사용자 대표들이 노조대표와 합의한 금속노사 중앙교섭 체결 내용에는 대기업 사용자들이 부담을 느낄 조항들이 수두룩하다.
먼저 2004년 중앙교섭 합의 내용을 보면 손배·가압류를 금지하기로 했다.
이 때문에 불법쟁의행위로 인해 회사 측이 손해를 입어도 사용자는 책임을 묻기가 어렵게 돼 있다.
또 지난해 협상에서는 신기계 도입과 공장 이전 때 회사는 노조의 동의를 얻도록 합의했다.
노조의 경영참여를 인정한 꼴로,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처럼 해외로의 공장 이전을 추진하는 대기업들에는 족쇄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또 불법파견 판정시 정규직으로 전환하도록 합의한 조항도 대기업이 수용키 어려운 조항이다.
결국 노사 간 갈등뿐 아니라 노(勞)-노(勞) 간,사(使)-사(使) 간 대립과 갈등이 산별교섭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선진국에서도 기업별 교섭을 벌이는 사례가 많은데 기업 규모와 매출,경쟁력이 천차만별인 사업장들이 한자리에 모여 공동교섭을 벌이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노동현장이 안정되기 위해선 산별교섭이 선진국처럼 성숙된 모습을 갖추던가,그동안 노동현장의 교섭 형태로 뿌리내린 기업별 체제로 돌아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금속노조 내 거버넌스(지배구조) 체제만 정비된다면 산별교섭 형태도 정착될 수 있을 것이란 분석도 있다.
즉 투쟁만능주의에서 탈피하고 정치적 이슈를 내건 파업 자제,이중 삼중의 교섭 및 파업을 자제한다면 오히려 산별교섭이 급속히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