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WALL STREET JOURNAL 본사 독점전재 ]

올해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3개국)의 성장률이 2000년 이후 처음으로 미국을 앞설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 대륙은 짧은 경기 상승세를 넘어서 지속적인 '르네상스'를 구가할 기회를 잡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런 절호의 기회를 날려 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이런 우려는 프랑스보다 독일에서 더하다.

지난 5년 동안 독일과 프랑스는 경제적으로 상반된 길을 걸었다.

2001년의 경기 침체기에 독일은 복지 혜택을 줄이고 세금 부담을 낮추는 방식으로 통일에 따른 피곤함을 털어냈다.

독일 정부는 노동자들을 설득하는 데도 앞장 섰다.

독일 기업들이 싼 노동력을 찾아 이전할지 모른다는 우려를 제기해 노동자들이 낮아진 임금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했다.

이런 처방은 효과적이었다.

프랑스는 반대로 움직였다.

활기를 잃은 경제를 자극한다는 명목으로 집 수리비에 붙은 부가가치세를 깎아 주는 등의 재정적으로 하찮은 일에 매달렸다.

이런 피상적인 정책은 자크 시라크 당시 대통령에게 시간만 벌어줬을 뿐 프랑스 경제의 뿌리 깊은 병폐를 치유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이웃의 동유럽 국가들마저 성장률 측면에서 프랑스를 앞서가기 시작했고 실업률은 경쟁국인 독일을 훨씬 웃돌았다.

프랑스 경제의 이 같은 침체는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이 대권을 잡는 데 결정적인 도움이 됐다.

그는 대선 캠페인 동안 프랑스 노조의 경직성을 누그러뜨리는 데 주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그의 청사진은 분명했다.

노조의 힘을 약화시키고 주당 35시간 노동 시스템을 폐지하는 동시에 해고를 까다롭게 했던 규정들을 버렸다.

그가 앞으로도 노동 시장의 개혁에 집중한다면 프랑스는 더 강력한 경제 구조와 낮은 실업률을 가진 나라로 바뀔 것이다.

이류 국가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오히려 프랑스에 약이 된 셈이다.

반대로 최근 독일이 성취한 경제적 성과는 자기 만족이라는 위험한 결과를 낳고 있다.

재정적 분별력이 떨어지는 바람에 정부 지출은 올 1분기에 전년동기 대비 2.1% 늘어났다.

최근 9년 동안 가장 빠른 증가세다.

더 나쁜 건 노동 시장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선거 기간 동안 해고 규정을 완화하고 노사가 낮은 임금에 합의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면책 조항'을 신설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사민당과 대연정을 꾸리는 과정에서 이런 공약은 없던 일이 됐다.

심지어 메르켈 총리는 사민당의 최저임금 관련 정책에도 굴복했다.

이로 인해 그동안 독일 경제를 떠받쳐 오던 임시직 일자리를 줄일 우려가 높다.

헤지 펀드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려는 움직임도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런 정책은 금융 서비스가 경제 성장의 주요 동력이라는 것을 망각한 행동이다.

독일의 금융서비스 규제는 금융 허브의 측면에서 프랑크푸르트를 훨씬 앞서고 있는 영국 런던만 도와줄 뿐이다.

정리=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

◇이 글은 뱅크오브아메리카의 이코노미스트 홀거 슈미딩이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에 '자리 바꾸기(Trading places)'라는 제목으로 쓴 글을 정리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