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炅河 < 한국제약협회 윤리위원장 >

최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약가(藥價) 적정화 방안으로 국내 제약산업은 1987년 물질특허 도입 때와 마찬가지로 거대한 변화의 시대를 맞게 됐다.

한·미 FTA에서 의약품 분야는 농업 부문과 함께 핵심 의제의 하나로 미국에 대한 우리 측의 중요한 협상 카드로 작용했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바와 같다.

특히 미측의 요구로 21일부터 시작되는 추가 협상 대상에 올라 있기도 하다.

미국이 이처럼 제약 부문에 집착하는 배경은 고부가가치,지식집약적인 산업 특성과 고령화 사회로 급속히 진입하고 있는 한국 시장의 무한한 잠재성에 기반하고 있다.

이는 국내 제약산업의 미래 가치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환경 변화가 초래할 산업의 공동화(空洞化)와 보건 주권의 훼손 두 측면에서 위기 의식을 갖고 정부와 기업도 단계적으로 준비해 왔음은 물론이다.

그동안 지속적으로 연구개발(R&D) 비용을 투자해 신약,제네릭,원료 분야 등에서 독자적인 기술력을 키워 왔으며 일부 분야에선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또한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우수한 품질의 의약품을 생산하고 수출하기 위해 공장 차등평가제 도입과 함께 선진국 수준의 의약품 제조품질 관리 기준인 cGMP,의약품 국제 상호인증 기준인 ICH 등 글로벌 수준을 정부에서도 요구하고 있다.

우리의 국제적 지위나 경제력에 비춰 글로벌 스탠더드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한·미,한·유럽연합(EU) FTA라는 큰산을 넘어 제약사 스스로가 선택과 집중의 전략을 구사해 독자적인 생존력을 키우고 범국가적인 지원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21세기 새로운 국부를 창출할 성장 산업으로서 도약의 기회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도 제약 산업의 특성과 글로벌 스탠더드에 대한 보다 균형 있는 시각이 확산될 필요가 있다.

우선 의약품의 최종 고객은 환자이지만,생명에 직접 연관되는 특성으로 선택과 투여는 전문인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제약사가 새로운 약물이 나왔을 때 효능과 안전성,부작용에 대해 의사와 약사에게 제대로 알려 더 좋은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면 이는 결국 환자의 생명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기여하게 될 것이다.

제약사의 마케팅 활동에 대해 부정적인 측면이 많다는 문제 제기에 앞서 이러한 긍정적인 면이 분명 있다는 이해가 아쉬운 시점이다.

둘째 글로벌 스탠더드의 의약품 개발과 품질에 관련된 부문은 cGMP나 ICH 가이드 라인과 같이 과학적인 접근에 기반하고 있어 한국이나 미국 일본 등에 동일하게 적용돼야 한다.

하지만 프로모션은 커뮤니케이션을 비롯 사회적 접근의 특성이 강하기 때문에 나라와 문화별로 차이를 보일 수 있다.

또한 과학적인 코드에 있어선 '1+1=2'라는 정답이 나올 수 있지만,프로모션은 3이 될 수도 5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실정에 맞는 프로모션 코드를 시급히 마련해야 하며,정부도 규제와 함께 좋은 약이 허용된 테두리 안에서 프로모션을 펼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셋째 글로벌 스탠더드의 조건하에서 국내 약가가 적정하게 산정될 수 있느냐 여부다.

현재 국내 제약사는 G7(서방선진 7개국)의 57% 수준이라는 저평가된 약가 구조(2006년 보험등재가격 기준)를 가지고 연구개발은 물론 글로벌 기준의 인프라를 갖추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들이고 있다.

물론 이러한 노력은 국내 제약사가 반드시 가야 할 길이기도 하지만,투자에는 항상 재원(財源)이 따르는 것으로 제약을 산업으로 보는 사회의 시각이 절실하다.

생명을 다루는 약을 만드는 제약회사는 상대적으로 높은 윤리 의식이 필요하고,국민의 건강을 증진시키는 데 기여한다는 자긍심과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

또한 제약은 환경친화적,지식집약적인 특성으로 천연 자원이 부족하고 우수한 인재에 의존해야 하는 한국적 특성에 매우 적합한 산업이다.

바로 이런 점들이 국내 제약산업이 글로벌 무한경쟁 시대를 극복하고 국가의 새로운 성장 엔진으로서,또한 유사시 보건 주권을 확보하는 주체로서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중외제약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