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절망감에 빠졌다. 품질 괜찮고 값도 싼 일본 제품이 밀려오자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재정과 무역의 쌍둥이 적자가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와중에서였다. 공장 철망과 기계는 물론 미국인들의 자신감에도 녹이 슬었다. 1980년대 초 일이다.

노동전문기자로 일하던 로버트 레버링은 이 어려운 시기에도 놀라운 성과를 이어가고 있는 회사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 회사들의 공통적인 성공요인을 찾아내면 미국 기업 전체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고 믿고 발품을 팔았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일하기에 훌륭한 미국 100대 기업'이란 책이었다. 나중에 경제전문지 '포천'이 주도하게 된 '훌륭한 일터(GWP:Great Workplace)운동'은 이렇게 시작됐다.

레버링이 발견한 훌륭한 일터의 공통점은 세가지다. 신뢰,자부심 그리고 재미. 상하 간에 서로 믿고,자기 일을 자랑스럽게 여기며,동료와 함께 일하는 것이 너무 재미 있는 기업들은 어려운 시절에도 놀라운 성과를 내고 있었다.

훌륭한 일터 운동은 일본의 품질혁명에 대응한 '6시그마 운동'과 함께 세계 제일 경제국 미국을 만든 바탕이 됐다.

올해 초 발표된 '포천 100'에 1등으로 오른 기업이 바로 구글이다. 창립 이래 이 순위에 한 번도 오르지 못하던 구글이 단번에 1등으로 오르면서 구글은 시장에서뿐 아니라 내부고객과 구직자들에게도 최고의 회사로 자리를 굳혔다.

그런데 구글을 훌륭한 일터로 만든 결정적인 비결은 일과는 상관없는 것이다. 바로 '밥'이다. 점심은 외부 견학자들에게도 무제한 제공되고 스낵코너는 24시간 개방이다. 얼마 전 방한했던 에릭 슈미트 구글 회장이 "구글에선 음식은 물론이고 세탁,마사지,치과치료까지 모든 것이 공짜"라고 말해 눈길을 끌었고 최근엔 현지 견학을 다녀온 네티즌이 '밥' 위주의 사진을 담아 올린 기행문이 인터넷에 떠돌며 화제가 되고 있다.

돈에 여유가 생겨서 음식을 공짜로 주게 된 것이 아니다. 구글은 창립 초기인 1998년에 이미 전담 요리사를 뽑았다. 직원들이 뭘 먹을까 고민하며 밖으로 나가 시간 낭비할 필요 없이 편하게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현재의 본사인 실리콘밸리 마운틴뷰로 이사할 때쯤 구글은 직원들에게 '환상적인 음식'을 무료로 제공하는 업체로 더 유명해졌다. 훌륭한 일터의 세 가지 조건에 '밥'이 추가되는 순간이라고 할까. 이런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닌 것은 직원들의 90%가 구글이 좋은 이유로 음식을 들고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말해준다.

물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새뮤얼슨 말대로 '공짜 점심(free lunch)'이란 없을지 모른다. 공짜점심을 먹을 자격을 갖기 위해서는 치열한 입사,승진 경쟁을 치러야 할 것이다. 또 사내에서 모든 것이 해결될 때 회사는 시장이나 고객중심이 아니라,공급자 중심으로 바뀔 우려도 있다.

분명한 것은 이런 시각에도 불구하고 구글의 '밥'이 이미 세계적인 관심사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밥' 하나로 올리는 홍보효과는 돈으로 환산될 수 없을 정도다. 훌륭한 일터의 21세기 버전은 구글의 '밥' 때문에 인간 냄새를 훨씬 많이 풍기게 됐다. 대립적 노사관계의 틀을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풍토에선 부러움이 쌓여갈 뿐이다.

권영설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