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安 建 榮 고운세상피부과 네트워크 원장 medilink00@naver.com >

필자가 일본유학 시절 예의 바르고 친절한 일본인들의 성품에 반하기도 했지만 항상 뭔가 부족함을 느꼈다. 함께 하는 술자리를 마치면 정확히 나누어 술값을 부담하는 그들을 보면서 합리적이란 생각도 들었지만,우리식 표현으로 하자면 정(情)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비록 넉넉지 않은 형편일지라도 가난한 이들을 위해 밥 한 숟가락 얹어 줄 정도의 후덕한 정이 있던 민족이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정 문화'는 우리나라 경제성장과 산업화 속에서 사라지는 것 같았다. 앞만 보고 뛰다 보니 정을 나누는 일도 점차 없어져 갔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 디지털 문화 활성화와 함께 정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도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고,정을 나눈다. 동호회 활동을 열심히 하는 어느 지인은 대한민국 국민이 모두 동창이 된 듯하다고 표현할 만큼 끈끈한 관계를 만들 수 있는 인터넷 동호회를 예찬했다.

또 최근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UCC 동영상을 보더라도 디지털 정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살림이나 쇼핑,생활 등 아기자기한 노하우를 아무런 대가 없이 공개하는 사람들은 동영상을 만드느라 쓴 시간이나 돈을 손해본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정이 넘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란 생각이다.

필자의 멘토인 부산의 K원장님도 오랫동안 정을 실천해 온 분이다. 수십년간 쌓아온 치료에 대한 노하우와 새로운 치료법을 경쟁자에게도 흔쾌히 공개하신다. 학회 등의 일로 부산을 방문하는 사람이 있으면 안면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내 집에 모시기를 꺼리지 않으신다. 손익을 생각하지 않고 정을 베푸는 모습은 여러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덕분에 K원장님은 친구가 많은 부자가 되었다.

우연히 계산기를 찾다가 시계,휴대폰,PDA,컴퓨터에도 숫자를 척척 계산해 내는 기능들이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우리한테 그렇게 계산할 일이 많았던가.

친구를 사귈 때 전자계산기로 손익을 따져서 만난다면 그 인생이 행복할까. 아마도 마음을 나눌 진정한 친구 하나 없이 쓸쓸히 노년을 맞는 삶이 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우리 인생에는 숫자로 계산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존재한다. 소수점 몇 자리,한 두 자리쯤은 툴툴 털어버리고 웃어버리면 어떨까. 조금은 손해라 생각될지라도 정이 넘치는 사회를 꿈꾸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