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0월 독일을 방문했을 때 일이다.

독일노동조합총연맹(DGB) 관계자는 사민당 정권의 노동개혁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당시 슈뢰더 정권이 2003년부터 추진해온 '아젠다 2010'이란 개혁정책 탓에 노동자들의 삶의 질이 급격히 추락하고 있다는 불만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사민당과의 밀월관계는 완전히 깨졌고,원수지간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래서 "개혁정책 저지를 위해 총파업을 단행했냐"고 묻자 그는 "독일노총 지도부의 감정은 무척 격앙돼 있었다.

하지만 현장 노조원들의 반응이 시큰둥해 파업을 벌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부 노조지도부의 투쟁전략에 따라 정치파업을 벌이는 한국 노동운동과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2003년 5∼6월 독일 금속노조(IG메탈)가 옛 동독지역 근로자의 근로시간을 38시간에서 35시간으로 단축해줄 것을 요구하며 4주간 대규모 파업을 벌인 적이 있다.

그런데 파업이 실패로 돌아가자 파업지도부가 책임을 지고 깨끗이 물러났다.

클라우스 츠비켈 당시 IG(이게)메탈 위원장은 파업 실패 뒤 "노조원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기 어렵다고 생각해 위원장직을 사퇴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노동현장은 어떤가.

마치 '뒷골목 노조'가 시비를 걸듯 시도 때도 없이 파업을 벌인다.

지난해만 해도 민주노총에서 주도한 정치파업이 12차례에 달한다.

'투쟁거리가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투쟁한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다.

그 중심에는 좌파 이데올로그들이 버티고 있다.

이들은 투쟁의 깃발을 올려 자신들의 존재와 힘을 과시하고 노동판 내 정치적 입지를 강화한다.

'목소리 큰 x이 장땡'(voice effects)이란 말이 통하는 곳이 바로 우리 노동운동판이다.

그러다보니 대화를 강조하는 온건 합리주의자는 맥을 못춘다.

조직 체계상 민주노총 내 권력서열 1,2위인 이석행 민주노총위원장과 정갑득 금속노조위원장 등 온건파들이 강경파들의 눈치를 살피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파업이슈가 너무 산만하고 정치적이다.

이라크 파병 반대를 비롯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노사로드맵 철회,비정규직법안 반대 등 온갖 정치적,사회적 이슈가 파업메뉴로 등장한다.

파업이 실패했다고 해서 책임지는 노조간부는 물론 없다.

파업의 목적이 정책변경보다 투쟁 자체에 있기 때문에 파업의 성공여부를 따진다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25일 금속노조의 파업은 한·미 FTA 반대가 핵심 이슈다.

최대 수혜를 입게 될 자동차,조선,기계 업종의 노조가 주축이 된 금속노조에서 '경제적 피해'를 파업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현장에선 투쟁만능주의에 대한 역효과가 드러나고 있다.

현대차노조 지도부는 조합원들의 반발에 밀려 이례적으로 파업일정을 축소했다.

노조간부들은 요즘 가는 곳마다 따가운 시선을 느낀다고 한다.

한 노조간부는 "과거에는 파업을 벌이다 교도소에 갔다오는 것을 감투쓰 듯 했는데 요즘은 꺼리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몇 년 전만 해도 교도소에 가면 민주화 세력으로서 양심수 대접을 받았는데 지금은 잡범 취급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제 간부만을 위한 정치투쟁의 시대는 가고 있다.

'노조원의,노조원에 의한,노조원을 위한' 노동운동을 국민은 바라고 있다.

윤기설 노동전문기자 upyk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