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자서전 ‘영원한 청년정신으로’를 펴낸 백낙환 인제대학-백병원 이사장은 ‘영원한 청년정신’보다 ‘영원한 청년’이라는 자서전타이틀이 더 어울릴 것같다는 인상을 주었다.

출판기념회 이튿날인 22일 서울 백병원 집무실에서 인터뷰를 하면서 올해 산수(傘壽∙80)를 넘긴 노인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인생역정과 업적에 대해 별로 얘기하지 않았다. 인터뷰 내내 미래에 대한 비전과 구체 계획에 대해 얘기했다. 자서전을 좀 더 있다가 출판하는 게 후학들에겐 더 나을 뻔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에겐 앞으로 해야할 일들이 많았다.

먼저 ‘청년론’에 대해 들어보았다.

“청년이냐, 노인이냐는 나이 차이로만 봐서는 안됩니다. 문제를 받아들이는 자세에서 비롯됩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자세,살아온 날을 돌아보기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에 대해 계획하는 사람은 언제나 청년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요새 청년들에게 하실 말씀이 많지요.

“너무 쉽게 현실에 안주해 버리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변하지 않은 상황(환경)을 원망만 해봐야 시간만 낭비될 뿐 이뤄지는 것은 없습니다. 젊은이는 앞날이 창창하기 때문에 나아갈 방향을 선택해서 청년정신으로 몰두하면 못 할 일이 없습니다. 멋있는 삶이란 잔재주 부리지 않고 근면 정직 성실하게 일편단심으로 정진하는 것입니다.”

-동생인 백낙청 교수의 경우에서 보듯이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강직함과 선비정신이 가풍으로 여겨집니다. 그런 속에서도 일찍이 일제 때 삼촌인 백인제 선생께서 지금의 서울의대 교수 자리를 박차고 개인병원(백병원)으로 독립을 한 일이나,이사장께서 별 인연이 없는 부산에서 백병원의 장래를 걸기로 결단을 내린 데서 보듯이 경영자적인 승부 기질도 두드러집니다.

이 두 가지는 양립하기 힘들거나 둘 다 갖추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운데….


“경영 감각이 어디서 왔느냐고 한다면 우리 집안 가훈이 ‘원리(이론)를 경주하라,실천은 생명이다’입니다. 이론과 실천을 동시에 중시하는 실용적인 가풍내지는기질을 요즈음 시각에서 보면 경영자적인 소양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백병원이 부산에서 제2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이번 기회에 구체적인 플랜을 들려주시죠.

“해운대에 1000여개 병상의 초대형 병원을 착공했습니다. 이것이 완성되면 서울의 현대 아산, 강남 삼성, 서울대, 세브란스 등 빅4에 버금가는 수준이 됩니다. 부산에 이미 2개를 운영 중입니다. 해운대 백병원은 해운대에서 동해안을 따라 종합의료벨트를 구축하려는 부산시 의료허브전략의 핵심 민간투자사업이기도 합니다.”
-현재 대구까지 깔린 고속철 노선이 부산까지 개통되면 서울~부산 간 KTX 운행시간이 더 단축됩니다. 그러면 서울의 흡인력이 더 강해져서 의료고객이 서울로 더욱 집중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부산 백병원이 덩치키우기만으로 앞날을 장담하기엔 불안한 측면이 없지 않은데요.

“우리는 서울을 뛰어넘어 부산에 중국과 일본 고객까지 유치하는 ‘동북아 의료허브’ 구현이 목표입니다. 그렇게 되면 KTX로 부산 고객이 서울로 가는 게 아니라 서울의 고급 의료 소비자들이 부산으로 내려올 것입니다. 그런 병원을 만들 생각입니다. 부산은 바다를 끼고 있고 제주도를 제외하곤 기온이 가장 온화한 지역이어서 도전해 볼 만합니다. 일본과 중국을 잇는 비행기와 페리여객선은 늘 붐비고 호화유람선(크루즈) 서비스까지 가시화되고 있어 부산은 의료허브 입지로서도 우수합니다.”

-동북아 의료허브를 인제대학-백병원 브랜드만으로 구현하기엔 솔직히 힘이 달리지 않을까요.

“사실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버드 의과대학과 손잡고 부산경제특구(부산진해경제자유구역)에 속한 명지지구 국제의료복합단지 사업에 참여키로 했습니다. 보스턴의 하버드 의대 일부가 옮겨와서 백병원과 함께 일한다고 보면 됩니다.

홍콩의 투자회사인 ‘스트롱하우스’ 가 펀딩(자금조달)을 담당하기로 했습니다. 하버드를 대표한 ‘하버드 메디컬 인터내셔널’은 이미 두바이 등지에서 이 같은 합작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 병원은 600병상 규모로 의료보험 적용을 받지 않는 최첨단 고급 의료서비를 제공하는 럭셔리 메디컬센터로 운영될 것입니다. 이곳에는 하버드병원뿐만 아니고 투자주체는 각각 다르지만 호텔 컨벤션 쇼핑몰 외국인주거단지 외국인학교 등이 함께 유치되는 국제의료복합단지로 조성키로 정부와 부산시에서 기본계획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하버드 의사들이 온다면 이들과 함께 근무했다는 자체가 경력에 도움이 되겠고 그렇다면 서울에서도 젊고 유능한 의사들이 부산으로 오겠군요.

“병원의 성패는 의사 수준에 달려 있습니다. 현대 아산이 바로 이 전략으로 톱에 올랐지요. 미국에서 이름 난 한국 출신 인재들을 다 데리고 왔어요. 우리는 한국 출신을 넘어 외국인 스타의사들-하버드 의사들을 초빙해서 동북아 톱이 되어보겠다는 것입니다. 싱가포르 홍콩도 하는데 우리가 못할리 없지요.”

-의료허브를 추진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입니까?

“의료는 이제 반도체나 자동차처럼 국제경쟁력을 발휘해서 달러를 벌어들이고 일자리를 창출하며 지구촌에 기여하는 글로벌비즈니스로 거듭나야 합니다. 서구 선진국은 물론 싱가포르 두바이 홍콩 등도 의료산업을 이른바 신성장동력, 첨단서비스산업으로 보고 국책차원에서 육성하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선 국내 의료시장을 완전히 개방해야 합니다.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를 통해 구현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아쉽습니다. 우리 의사 간호사 의료기사들의 수준이 세계적이어서 개방해도 얼마든지 경쟁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외국의 일류병원, 최고 인재들과 제휴 등을 통해 ‘동북아 의료허브’ 구현을 앞당길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이를 위해선 대외개방에 발맞춰 국내의 창의적인 의료경영인들이 마음껏 비즈니스를 할 수 있도록 국민건강보험과 함께 사보험을 병행하고 의료영리법인 허용 등 제도개혁을 서둘러야 합니다. 그런데도 아직 정부와 관련시민단체 등은 국내적인 시각에 머물러 이것을 가로막고 있으니 정말 답답합니다.”

-최근 병원들이 서비스혁신을 통해 진화하고 있습니다. 특급호텔에 병원이 속속 입주하고, 중소병원은 지역 밀착형 커뮤니티 센터로, 실버타운과 융합하는 병원도 생기고 있습니다. 서구에선 병원과 크루즈가 융합하는 사례도 나왔고요. 백병원은 어떻습니까?

“해운대 병원은 온천과 연계한 토털 헬스케어 서비스 같은 것도 연구 중입니다. 병실도 기본 4인실로 합니다. 냉장고와 TV 등 편의시설도 호텔을 벤치마킹 중입니다.”

-그동안 병원 경영이 너무 의사 중심으로 이뤄져온 측면이 강합니다. 이제 글로벌의료허브를 지향하면서 병원 경영에 타분야 전문경영인을 대거 수혈할 생각은 없으신지요. 이를테면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 신라호텔이나 롯데백화점 출신을 전담 CEO로 영입한다든지….

“환자는 좋은 의사를 믿고 옵니다. 그게 제일 중요하죠. 하지만 융합서비스가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분야 전문가 영입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고민 중입니다.”

- 인제대학 이사장으로서 요즈음 대학입시를 둘러싼 정부와 대학들의 갈등에 대해 어떻게 보시는지.

“교육이 잘못되어 우수학생들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교육 때문에 가족이 흩어지는 현실입니다. 교육도 대학처럼 대외적으로 완전개방하고 자율화해야합니다. 대신 정부는 학교를 정확하게 평가하고 취업률 같은 학교 정보를 세세하게 공개하도록 해서 경쟁을 촉진하고 비리가 자연스럽게 노출되고 도태되도록 하면 됩니다. 자립형사립고 특목고 설립도 자율화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론 기여입학제도 도입해야 한다고 봅니다. 부자들의 기여로 국내는 물론 우리보다 못사는 빈국의 인재들까지 길러낼 수 있으면 한국은 세계로부터 존경받고 그것이 곧 글로벌 경쟁력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기념관 유치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노무현 도서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김대중 도서관 형태로 말이죠.”
-퇴임 대통령의 기념관 건립에 정부가 보태주는 것이 있습니까.

“노무현 대통령이 돈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기부금을 받아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대통령의 생가와 가깝지는 않지만 대학 안에 지어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대학이 좁아서 확답을 못했습니다. 어쨌든 맡아서 하겠다고 했더니 대통령께서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정치지도자를 길러내는 노무현 스쿨을 함께 추진한다는 얘기도 있었습니다만.

“기념 도서관만 결정된 상태입니다. 노무현 대통령 자신이 추진했던 정책들을 모두 다 기록해 놓으셨어요. 이를 보관하는 것이지요. 노무현 스쿨은 아닙니다.”

대담=이동우 부국장ㆍ정리=성선화 기자 lee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