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귀머거리! 벙어리! 넌 우리와 달라.네겐 희망이 없다고!"

중학교 때까지 이렇게 놀림받고 무시당하던 그가 가톨릭 신부가 된다.

다음 달 6일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열리는 서울대교구 사제 서품식에서 사제품을 받는 박민서 부제(39)다.

청각·언어장애인(농아·聾啞) 사제 탄생은 한국은 물론 아시아에서도 처음이다.

전 세계에서도 미국·영국·뉴질랜드·브라질·남아프리카공화국 등지의 14명에 불과하다.

듣지도,말하지도 못하는 불편함을 뛰어넘어 성한 사람도 가기 어려운 사제의 길에 들어선 그를 25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만났다.

그를 사제의 길로 이끈 서울 번동성당 정순오 신부(54)도 자리를 함께해 수화를 통역했다.

"부모님을 비롯해 제가 사제가 되도록 끊임없이 기도해주신 분들 덕분에 사제품을 받게 된 것 같습니다.

저같은 농아인들을 사랑하면서 어렵고 소외된 이들,버림받고 무시받는 사람들과 친구처럼 함께 사는 신부가 되고 싶어요."

경기도 고양에서 군인의 아들로 태어난 박 부제는 두 살 때 홍역을 앓아 항생제 주사 부작용으로 청력을 상실했다.

중학교까지 일반 학교에 다니며 놀림을 받아야 했고,고교 과정인 서울농학교 2학년 때 농아인이자 천주교 신자였던 미술학원 원장의 영향으로 천주교에 입문했다.

사제의 꿈을 꾼 것도 미술학원 원장 덕분이다.

"원장님이 천주교 사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셔서 나도 신부가 돼 가난하고 어려운 장애인들을 위해 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농아는 신부가 될 수 없다는 주위 사람들의 말을 듣고 너무나 실망해 다른 길을 갈 생각을 하고 있었죠."

이 때 만난 사람이 정순오 신부다.

정 신부는 부모님이 농아자여서 수화에 능통했고,대학 졸업 후 직장을 다니면서도 사제의 꿈을 포기하지 않은 박 부제를 미국에 유학보냈다.

미국의 농아 사제인 토마스 콜린 신부의 도움도 컸다.

"오로지 신부가 될 생각만으로 미국에 갔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영어를 ABC부터 공부해서 보통 3년씩 걸리는 수화와 작문·독해시험을 1년 만에 통과했죠.그 땐 정 신부님이 학비를 보내주실 때라 돈이 아까워서 더 공부에 매달렸거든요."

흔히 수화는 만국공통어인 줄 알지만 한국어 수화와 영어 수화는 90% 이상 달라서 새로 배워야 했다.

또 신학·철학 등의 학문적 개념은 손가락으로 알파벳을 하나하나 표현하는 지화(指話)로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공부하는 데 훨씬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런데도 그는 농아 종합대학인 갈로뎃대학에서 4년 만에 철학사·수학사 학위를 받고 농아를 위한 신학 과정이 개설된 뉴욕 성요셉신학교에 진학했다.

"성요셉신학교에선 시간당 50달러씩 하는 수화전문 통역사를 쓸 수 없어 20달러짜리 속기사만 두고 공부해야 했기 때문에 어려움이 컸어요.

속기록만으로는 강의를 이해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죠.그나마 농아 신학과정이 1년 만에 폐지돼 얼마나 절망했던지…."

콜린 신부의 도움으로 다시 뉴욕의 성요한대학원에 들어간 그는 비로소 수화전문 통역사 두 명과 속기사 한 명의 도움을 받으며 공부해 2004년 석사학위를 받고 귀국했다.

이후 가톨릭대 신학대학에서 공부를 계속한 그는 지난해 7월 부제품을 받은 데 이어 다음 달 사제수품을 앞두고 있다.

"농아인들은 듣지 못하고 말도 하지 못하는 이중 장애인입니다.

그래서 농아인들은 수화통역을 해야 하는 미사보다는 사제가 직접 수화로 미사를 집전해주기를 바라지요.

그래서 수화를 잘 하고 농아들의 문화를 잘 아는 사제가 필요한 것입니다."

박 부제는 다음 달 8일 번동성당에서 일반 신자를 대상으로 첫 미사를 집전한 뒤 15일 서울가톨릭농아선교회에서 수화(手話) 미사를 처음으로 집전하면서 농아 사제로서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된다.

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