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거제시 신현읍 4차선 도로는 주말이면 가족 단위나 직장 동료들끼리 저녁식사 하러 나오는 차들로 극심한 교통체증을 앓는다.

인근 대형마트는 쇼핑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평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세계 2,3위 조선업체인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이 있는 거제는 수년째 계속되는 조선경기 초호황 덕에 가장 먼저 소득 3만달러 시대에 진입한 곳.두 조선소 직원 임금으로 연간 2조4000억원이 풀린다.

대규모 신규 조선단지를 추진 중인 경남과 전남의 지방자치단체들과 해당 지역 주민들은 저마다 '제2의 거제'를 꿈꾸고 있다.

앞다퉈 세우고 있는 조선소가 완공되면 고용 창출,인구 유입,소득 증대로 거제 못지않은 도시로 탈바꿈할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다.


◆장밋빛 전망 쏟아내는 지자체

남해안 조선소 건설 열풍의 진원지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앞세운 지자체다.

계획대로 사업이 진행될 경우 해남의 화원 조선단지(135만평)는 순수 조선소 규모에서 울산 현대중공업에 육박한다.

남해군이 계획 중인 조선소 면적도 100만평에 달해 삼성중공업 거제 조선소와 비슷하다.

두 지자체는 조선소가 완공되면 각각 10만명 이상의 인구 유입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지자체들이 조선업에 대한 세밀한 분석과 예측을 토대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불황이 오면 어떡하냐고요.

기업이 알아서 하겠죠 뭐.혹시나 망해도 조선소와 설비는 그대로 있지 않겠어요." 최근 공무원으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삼성중공업 직원은 대부분의 지자체들이 이처럼 일단 일을 벌이고 보자는 식으로 조선소를 유치하고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산업연구원 홍성인 연구위원은 "이미 가동에 들어간 신규 조선사들은 호황의 열매를 어느 정도 따 먹을 수 있겠지만 이제 막 계획 단계인 곳은 수년 뒤 조선소가 완공되더라도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지자체장들이 단기적인 성과에 집착,무리하게 조선소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는 비판도 거세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기존의 대형 조선소들은 수십 년간 기자재업체,블록업체 등과의 협력을 거쳐 세계적인 경쟁력을 확보했다"면서 "마치 조선소만 유치하면 단기간에 거제처럼 될 것으로 선전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며,오히려 훗날 불황이 오면 지역경제에 회복할 수 없는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배후도시 통한 개발이익 노리나

지난 5일 해양수산부가 확정한 공유수면 매립기본계획을 보면 고성 조선특구와 해남 화원산업단지 예정지가 눈길을 끈다.

이날 결정으로 두 지자체는 각각 41만4640평과 33만평의 바다를 매립할 수 있게 됐다.

남해군도 서면 일대 100만평 조선 단지 예정지 중 매립해야 할 해수면이 45만평에 이른다.

전남의 신안조선타운(446만평)도 전체의 19%를,고흥조선타운(91만평)도 29%를 공유수면 매립을 통해 확보해야 한다.

환경단체들은 이 같은 공유수면 매립 허용에 대해 해양 생태계를 파괴하면서 일부 기업에 사실상 특혜를 주고 있다고 주장한다.

공유수면 매립 논란과 함께 필요 이상으로 계획된 배후단지 사업자 선정과 조성 과정에서 특혜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대주그룹의 경우 해남 화원조선산업단지 인근에만 1,2차에 걸쳐 8만명이 거주하는 150만평의 배후도시 건설 계획을 갖고 있다.

백송종합건설도 남해 조선산업단지 내 조선소 주거·편의시설 건설에도 참여를 검토 중이다.

460만평 규모인 신안조선타운 공동주택용지 27만5000평엔 이미 4개 회사가 우선 분양까지 신청한 상태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건설업을 모태로 조선사업에 뛰어든 기업들은 배후의 주거단지 개발이익을 염두에 두고 시작했다는 의혹을 살 수 있다고 말했다.

해남·거제=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