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티미디어 시대의 최대 수혜자는? 요즘 추세로 보면 단연 미국드라마(미드)다.

역대 흥행 1∼5위가 몽땅 한국영화라고 뻐기는 사이 미드는 케이블TV와 인터넷 등을 통해 은근슬쩍 영상시장을 잠식했다.

미국에서 방송된 지 5∼6시간 뒤면 인터넷에 자막까지 뜨면서 극장관객을 줄이고 있다고 할 정도다.

국내 남자 광고모델 1위가 '프리즌 브레이크'의 주인공 웬트워스 밀러(석호필)라는 얘기도 들린다.

미드의 인기가 치솟자 케이블TV는 물론 공중파방송까지 미드 편성에 나섰다.

토요일 밤 '프리즌 브레이크(Prison Break)'를 내보내자 시청률이 오르면서 광고판매액도 3배나 증가했다는 마당이다.

미드의 인기 요인은 복잡하지 않다.

범죄수사 법정드라마 의학드라마 성장드라마 역사극 등 다양한 소재,시종일관 가슴을 졸이게 하는 탄탄한 구성,정신이 번쩍 나게 만드는 대사,복잡미묘한 인간관계를 잘 버무려놓은 이야기다.

할리우드 영화의 힘은 재미에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만 봐도 그렇다.

드라마와 영화뿐이랴.애니메이션과 게임 등 문화 콘텐츠의 중심은 모두 스토리다.

문화산업은 곧 이야기산업인 셈이다.

우리의 경우 그러나 제대로 된 이야기를 만들 사람이 없으니 일본 소설이나 만화를 들여온다.

'올드 보이''미녀는 괴로워''하얀 거탑''검은 집'까지 히트작 상당수가 일본 원작이다.

원작이야 어떻든 잘 활용하면 된다고 한다.

할리우드 역시 동양적 소재를 찾아서 활용한다.

그러나 할리우드물이 미국식 영웅주의를 입력시키듯 일본 소설이나 만화엔 은연중 일본 정서가 깃들어 있게 마련이다.

이야깃거리가 없어 일본 원작을 각색하는 수준으로 한류의 연속성을 기대할 수는 없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적당히 주물러 만들면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으론 이야기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

1시간짜리 행사 사회엔 몇백만원씩 지불하면서 며칠씩 고민해야 하는 원고엔 장당 1만∼2만원을 주는 풍토에서 치열한 작가정신을 기대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이야기산업을 발전시키려면 글값부터 제대로 쳐줘야 마땅하다.

박성희 논설위원 psh77@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