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등 국내 9개 대형 조선사 대표들은 지난 3월 조선공업협회에서 '고용질서 확립 협약'에 서명했다.

조선업 호황으로 인력난이 가중되자 핵심 인재를 서로 스카우트하지 않기로 '신사협정'을 맺은 것.가뜩이나 중국 조선소들이 설계·디자인 등의 분야에서 우수인력을 빼가는 상황에서 '안방에서라도 싸우지 말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요즘엔 신생 조선사들이 경계대상으로 부상하고 있다.

대규모 조선소 건립에 나선 업체들이 앞다퉈 인력 확보에 나서면서 기획분야의 차장급 직원은 기존 연봉의 2배를 받고 회사를 옮기기도 한다.

#지난 15일 경남 거제의 삼성중공업에서는 블록(선박의 부분품)품질에 대한 회의가 열렸다.

이 회사는 올해 선박 건조에 필요한 블록 108만t 가운데 9만8000t을 목포 대불공단에서 조달키로 했었다.

기존 공급선이던 인근 블록 협력사들이 신조선 건조로 전환했기 때문에 추가 운송비를 감수하고 내린 결정이었다.

삼성중공업은 그러나 대불공단 발주 물량을 계획의 절반으로 줄일 수밖에 없었다. 품질이 기대에 못 미쳐 일부 조립 공정에 차질이 발생하고 있어서다.

민경환 경영기획팀 부장은 "협력사의 숙련된 인력들이 더 좋은 조건을 좇아 석달에 한 번꼴로 일터를 옮길 정도여서 품질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규조선소 건설이 잇달으면서 국내 조선업계가 요동치고 있다.

인건비와 블록 가격이 동시에 오르면서 원가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인력 쟁탈전이다.

"3년은 지나야 밥값한다"는 현장의 얘기에서도 알 수 있듯 조선분야 숙련 인력은 단기간에 양성되지 않는 특성이 있다.

이에따라 신규 조선소들은 인적 네트워크를 총동원,기존 업체의 관리자와 현장의 숙련 근로자 확보에 나섰다.

최근엔 협력업체 직원은 물론 일부 직영직원(조선소 소속)의 이탈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안호균 대우조선해양 경영관리팀장은 "조선소의 용접은 단순한 땜질이 아니라 설계도면을 완전히 이해해야 하는 전문적인 작업"이라며 "때문에 기존 조선사에 들어와 일하는 협력업체 숙련 근로자들이 신규 조선사의 스카우트 표적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작년 말 현재 울산 거제 통영 목포 등 5개 지역 조선소의 협력사 직원수는 6만명. 올해 6000명 정도의 신규 수요가 발생할 전망이다. 대부분 기존 조선소가 아닌 신규 조선소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이다. 앞으로의 상황은 더 심각해질 가능성이 크다.

현재 남해안 13곳에서 추진 중인 조선소 면적(670만평)이 '국내 빅3' 업체 면적(420만평)보다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향후 4∼5년 뒤엔 10만명이 넘는 신규 인력이 충원돼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블록공급 부족과 납품가격 상승도 조선업계엔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조선사 관계자들 사이에선 "과거와 달리 요즘엔 블록업체들이 원하는 물건을 원하는 가격에 골라잡는 분위기"라는 탄식까지 나오고 있다.

거제의 조선사들의 경우 2005년 이전까지만해도 생산성 향상으로 하락하던 블록 가격이 지난해엔 원자재값 인상과 맞물려 t당 10% 이상,올해엔 5∼8% 정도 올랐다.

가격 협상 과정에서 일부 블록업체들은 20% 가까이 인상을 요구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대형 조선사들은 이 같은 원가 인상 요인을 상쇄하기 위해 앞으로 중국 공장에서 조달하는 블록 물량을 단계적으로 늘릴 계획이다.

해남·거제=류시훈 기자 bad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