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울산지역본부 조합원들이 울산상공회의소에 난입,이 지역 시민단체들이 준비한 파업 자제 촉구 현수막과 피켓 등을 마구 부순 26일의 사태는 노동계가 시민단체까지 공격한 것이라는 점에서 큰 파장이 예상된다.

노동계의 시민단체 공격은 거의 유례가 없는 일이기 때문에 충격을 더해 주고 있다.

이날 오전 11시15분쯤 민주노총 울산본부 조합원 50여명이 울산상의 본관 1층에 몰려와 한 시간가량 행복도시만들기울산협의회(행울협)가 현대차 파업철회 촉구 집회를 위해 준비해 둔 5000여점의 어깨띠와 현수막,피켓 등을 무차별 파손했다.

하부영 본부장 등 조합원들은 "울산상공회의소를 비롯한 행울협이 현대차 노조 죽이기에 나서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상의 로비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상의 직원들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이를 저지하던 상의의 한 관계자는 "반(反)FTA 정치 파업이 자기들 뜻대로 이뤄지지 않자 이젠 막가파식 폭력을 휘두르는 것 아니냐"며 "도대체 무엇을 위해,누구를 위해 이런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또 다른 관계자는 "시민들이 성금을 내 만든 행사용품들을 이렇게 무참히 훼손하는 것은 정치파업 철회를 촉구하는 100만 시민들의 염원을 짓밟는 도발 행위"라면서 "시민들의 거센 저항에 부딪치게 될 것"이라고 분노했다.

그는 또 민주적 절차를 중시한다는 민주노총이 이같이 비민주적인 행동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시민들의 비난도 쏟아졌다.

울산 남구 신정동의 김성철씨(45)는 "상의 앞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전달했으면 충분하지 왜 시민단체 소유물인 집회 용품까지 마구 파손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면서 "저렇게 난동을 피우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국민들로부터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노총 울산본부는 지난해에도 울산시와 상의가 추진 중인 '기업사랑 운동'을 친자본 반노동 기업사랑 운동이라며 울산시를 상대로 즉각 폐지할 것을 요구해 시민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자초했다.

심지어 시민단체와 지역 상공인 등이 현대차 노조의 파업 중단을 촉구하자 이에 대한 보복으로 회식 중단,휴가용품 구매 보류,현금영수증 100% 주고받기 등의 행동 지침을 내걸고 '소비 파업'을 한 달여간 벌이기도 했었다.

현대차가 하루빨리 파업의 덫에서 벗어나 정상화되기를 바라는 울산 시민들의 기업 사랑까지도 철저히 노동운동 대상으로 삼고 있는 이러한 노동계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는 이날 오후 3시 현대차 울산공장 정문 앞에서 폭발했다.

행울협 소속 회원과 시민 등 1만여명은 현대차 명촌 정문,본관 정문,4공장 정문 등에서 현대차 노조의 파업 철회를 촉구하는 집회를 가졌다.

이들은 회사를 출입하는 근로자들에게 '파업자제 호소문'을 나눠 주면서 "고객이 없으면 현대차도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다"며 "국민들 사이에 현대차 불매 움직임이 고조되고 있는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해 달라"고 촉구했다.

이두철 행울협 공동 의장(울산상의 회장)은 "울산은 '노사 분규의 도시'라는 오명만 벗으면 한국의 산업 수도에서 세계 경제의 중심 도시,행복 도시로 나아갈 수 있다"면서 "지역 발전을 가로막고 시민을 실망시키는 현대차 노조의 잇단 파업에 대해 시민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이러한 참담한 비극을 하루빨리 청산하는 길은 오로지 노조 지도부에 달려 있다"며 파업 철회를 촉구했다.

행울협은 당초 현대차 울산공장 14km 담장을 인간띠로 둘러싸는 대규모 집회를 계획했으나 경찰의 집회신고 일정 때문에 '인간띠 집회'가 불발로 끝나 이날 정문 집회만 가졌다.

그러나 만약 노조가 계속 파업을 고집한다면 울산 시민 2만여명이 참여하는 인간띠 잇기와 30여만명 규탄대회에 본격 나서게 될 것이라고 노조에 경고하기도 했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