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영국을 이끌어 오다 27일 현직에서 물러난 토니 블레어 총리가 끝까지 특유의 유머감각으로 총리로서의 마지막 자리를 장식했다.

매주 수요일 낮 12시 하원에서 열리는 주례 '총리와의 질의'에 마지막으로 참석한 블레어 총리는 서두에 평소대로 일정 등을 길게 설명하기는 했지만 이날은 보통때의 엄숙한 분위기와는 달리 사뭇 여유있는 표정을 보였다.

여전히 의원들의 신랄한 질문이 계속되는 가운데 유럽통합에 회의적인 한 인사가 지난 주 합의된 유럽연합(EU) 개정조약안을 국민투표에 회부하라고 요구했을 때에는 블레어도 짐짓 화가 나 조롱하듯 답변하기도 했지만 그의 말투에선 이젠 자신이 총리가 아니라는 느낌이 배어 나왔다.

그는 개정조약안에 동의하지 않는 의견이 있을 수 있다는 데 공감한다면서 "이제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오 르바, 아우프 비더제엔, 아리베데르치'(각각 불어, 독어, 이탈리아어로 '다시 만납시다') 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참석자들의 질문에 일일이 답변하면서도 생뚱맞거나 공격적인 내용에는 "정말이지 거기에 신경 끊었습니다"라며 간단히 대꾸하고 손사래를 치거나 자리로 돌아가기도 했는데 이 말은 블레어 자신이 이달 초 한 TV의 자선모금 촌극 프로에 출연, 말한 대사에서 따온 것.
그는 또 "오늘 아침엔 동료(의원) 여러분과 회의를 했지만 오후엔, 아니 앞으로는 이렇게 만나지 못하겠군요"라고 말해 의원석에서 폭소가 터져나왔다.

한편 블레어 총리는 영국의 이라크 및 아프가니스탄에의 파병과 관련 "병사들이 그곳에서 위험에 직면하고 있는 것은 유감이지만 그들이 우리 삶의 방식을 파괴하려는 자들에 맞서 이 나라와 세계의 안전을 위해 싸우고 있는 것으로 확신한다"면서 파병의 당위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블레어 총리의 이날 하원의원들과의 만남은 그가 자신에게 전달된 한 서류를 공개하면서 미소를 자아내게 한 것으로 막을 내렸다.

"실업자의 인적사항. 성: 블레어, 이름: T... 이 서류는 중요하니 잘 간직하십시오. P45(영국에서 근로자가 일자리를 잃을 때 받게 되는 공식 서류)."


(런던 AP.AFP= 연합뉴스) bull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