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秉柱 < 서강대 명예교수·경제학 >

예전 시골 골목대장들은 만나면 으레 제 힘 자랑으로 상대방 기를 꺾으려 들었고 궁해지면 자기 아버지 힘을 빗대며 씩씩거리다가 한 쪽이 울음보를 터뜨리는 것으로 승부가 났다.

요즘 도시 아이들은 제 집 아파트 평수로 기선을 잡는다는 속설이 있다.

어른들은 무엇으로 힘 겨루기를 하나? '지도자'로 행사하는 정치인들이 요즘 상대방 헐뜯기 게임에 열중하고 있다.

여야간에 흠집 잡기보다 야당 파벌 간의 흠집 내기가 가관(可觀)이다.

마치 쟁권쟁취가 기정사실인 듯이 착각하고 있다.

아직도 12월 선거일까지 반년 가까운 세월이 남아 있어 여권이 통합해 단일 후보를 앞세워 "Again,2002"를 외치면서 여론 몰이에 성공할 수 있음을 망각하고 있다.

북한의 핵 위협,반복되는 미사일 발사,중국 급부상으로 빚어지는 정치·경제적 위험과 기회,청년실업과 물가 등 중요사안들은 정치권 힘 겨루기에서 잊혀지고 있다.

예전 아이들 싸움은 어른이 등장하면 탈없이 끝났다.

요즘은 아이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되기 일쑤다.

학부모가 교사 때리기에 나서고,기업 총수가 아들 대신 주먹을 날리는 세상이다.

정부관료들이 대동소이하다면 지나친가?

엊그제 경제부총리가 국내 은행들을 독려(督勵)했다.

국내에서 손쉬운 돈놀이 영업관행을 버리고 해외로 진출하고,채권담보부증권 대출채권담보부증권 대출담보부채권 등 위험중개업무를 확대하고,인수합병(M&A) 등 투자은행 업무에 적극 나서야 하는 당부였다.

말씀은 좋지만 은행이 몰라서,싫어서 안하는 것이 아니다.

은행마다 전략팀이 있고 영업팀이 있다.

앞서 나가다가 서리 맞은 예가 한두번이던가? 외환 스와프 거래에서 돈 번 은행들은 부당투기 했다고 징벌하는 정부가 아니던가? 워낙 공손한 부총리 말씀이니 은행장들도 공손히 청취했을 것이다.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는 고리타분한 말이지만 아직도 관료에 대한 외경심(畏敬心)은 남아 있다.

국가원수에 대해서는 더욱 그리하다.

아무리 본인이 격의없이 대화하자고 제의하더라도 말이다.

정권 초기 일반검사들을 상대로 시작한 대화의 장에서 얻은 자신감으로 최근에는 언론인들 그리고 대학총장들을 불러 모아 특유의 화법으로 좌중을 휘어잡았다.

아무리 터놓고 얘기하자 한들 누구 앞이라고 백면서생 총장들이 속내를 털어 놓았겠는가? 삼불(三不)정책을 신성불가침의 교리로 삼고 국고보조금,대학정원,입시제도 결정권을 틀어쥐고 있는 정부가 버티고 있는데 말이다.

세계 일류국들은 고급인재를 길러 지식사회로 질주하고 있는데 붕어빵 찍어내는 낡은 교육을 탈피하려는 대학의 몸부림이 묵살되고 있다.

총장들의 벙어리 냉가슴을 지켜본 교수들은 집단적으로 모욕 당한 느낌이다.

지식사회란 무엇인가? 각분야에 전문가가 존중되는 사회가 아닌가? 권좌에 오른 이후에도 모든 분야의 최고경지가 따로 있음을 아는 인물이어야 진정한 민주적 지도자이다.

권위주의시대 청와대 입성 이후 모든 분야의 전문가로 자처하는 대통령들과 호가호위(狐假虎威)하는 가족들에 식상해 민주화 시대를 고대했었다.

불행하게도 민주화 이후에도 국민들은 실망과 절망의 수렁에서 구원되지 못했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조지 리튼(1803-1873)의 말은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들의 통치하에서는"이라는 전제조건을 달고 있다. 펜(비판)이 칼(권력)보다 못하다는 것은 돈키호테도 알았다.

어느 시대나 무소불위의 권력 앞에서 목 내놓고 발언하는 비판정신은 고귀하다. 그보다 진귀한 것은 귀를 기울고 수용하는 리더십이다.

취임 초 어느 자리에서 발언한 바 있지만 온갖 자원은 유한(有限)하고, 임기 또한 유한하다.

레임덕의 힘겨루기는 부질없다. 못 다한 일은 차기에 넘기면 된다.

엊그제 마지막 하원회의에서 토니 블레어가 전원 기립박수를 받고 물러났다. 부러웠다.

잔여임기 언행에 따라 노무현 대통령에게도 열려 있는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