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대공원,서울 대공원,롯데월드…."

프랑스 제약회사 '사노피 아벤티스(sanofi aventis)'의 에흐베 스튀텔 예산기획팀장(30)은 서울 시내 주요 어린이 놀이 공원을 줄줄이 꿰고 있었다.

지난 25일 오후 서울 강남구 역삼동 본사에서 만난 스튀텔 팀장에게 한국 생활 근황을 묻자 대뜸 가방을 열어 사진을 한 뭉텅이 책상 위에 내놓았다.

올봄에 서울 시내 공원을 다니면서 찍은 가족 사진이었다.

그가 보여준 사진에는 한국인 부인 이윤희씨와 딸 안나의 밝은 표정이 담겨있었다.

"제 부인과 딸입니다." 올해가 한국생활 5년째라는 스튀텔 팀장은 능숙한 한국말로 가족 자랑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요즘 스튀텔은 디지털 카메라 촬영 재미에 푹 빠져있다.

아마추어 수준을 벗어나기 위해 백화점 문화센터의 사진 교실에도 다니고 있다.

그가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첫딸 '안나'가 말을 배우면서 호기심이 왕성해져 나들이할 기회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근무만 끝나면 딸과 부인을 데리고 집 근처 도산공원에 나가 시간을 보낸다.

두 살난 딸이 뛰어다니면서 노는 모습이 너무 귀엽다고 자랑하는 스튀텔의 모습은 한국의 여느 아빠와 다르지 않았다.

파리가 고향인 스튀텔이 한국에서 가정을 꾸리게 된 것은 2002년 유학생활이 계기가 됐다.

그는 '에세 파리(ESSEC Paris)'에서 MBA 과정을 밟던 중 제휴 대학인 연세대의 교환 학생 프로그램으로 한 학기를 한국에서 보냈다.

대학에서 정치학과 경제학을 전공한 스튀텔은 급성장하는 아시아 경제에 관심이 많아 주저하지 않고 한국을 유학 대상지로 택했다.

인생의 반려자가 된 부인도 유학생활 중 한국어를 배우면서 만났다.

"한국으로 유학온 것이 운명이었던 모양이에요." 5년 전 학창 시절을 회고한 스튀텔은 한국에 와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유학을 통해 한국이 프랑스보다도 더 빠르게 경제 성장을 하게 된 의문점이 풀렸다고 했다.

"한국인의 역동성(dynamism)과 근면성은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월드컵 기간 중 한국인들의 폭발적인 열정을 느낄 수 있었고 동료 학생이나 기업인들을 보면서 한국의 저력을 실감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매력'에 빠진 그는 MBA 졸업 후 한국에서 일하기로 결심하고 사노피 아벤티스에 입사했다.

사노피 아벤티스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다국적 기업으로 22년 전 한국에 진출했다.

현지 법인인 ㈜사노피 아벤티스 코리아는 전문 의약품 시장에서 화이자에 이어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전체 직원은 450여명에 달하지만 외국인은 3명뿐으로 철저하게 현지화된 회사다.

스튀텔이 사노피에 입사한 후 회사는 매년 두 자릿수 성장을 거듭해 시장 점유율도 외국 제약회사 중 5위권에서 2위로 올라섰다.

스튀텔은 사원들로부터 인기도 높다.

직급상으로는 팀장을 맡고 있으나 나이가 많은 한국 직원을 깍듯이 선배로 부르고 예우를 해준다.

회의를 할 때도 영어와 함께 한국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다.

김수미 사원(예산기획팀)은 "한국적 기업 문화를 잘 이해하고, 상대편을 배려해 줘 외국 회사에 근무한다는 기분이 안들 정도로 분위기가 좋다"고 말했다.

한국에 정착한 스튀텔 팀장이 우리나라 미래를 어떻게 보는지 궁금했다.

"한국의 앞날이요? 프랑스보다도 발전할 겁니다." 세계 여러 나라를 다녀봤지만 한국인처럼 열심히 일하고 우수한 사람들이 많은 나라는 많지 않기 때문에 미래를 낙관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과 프랑스 관계도 더욱 깊어질 것이라고 자신했다.

2002년 월드컵 이후 프랑스에서 한국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한국 기업들의 프랑스 진출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내다봤다.

앞으로 꿈이 뭐냐고 물어봤다.

그는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한국에 오래오래 살고 싶다"면서 "문화 교류 확대 등 양국 간 관계 개선에도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스튀텔 팀장은 제약 업계 전문가로서 한국 업계에 대한 애정있는 충고도 한마디 했다.

세계 제약시장에서는 연구개발(R&D)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M&A(인수합병)가 봇물을 이루고 있어 한국 제약회사들이 덩치를 키우지 않으면 점점 힘들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글=최인한 기자/사진=허문찬 기자 jan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