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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파업의 '파'자만 들어도 정이 떨어집니다."

29일 오전 현대차 울산공장 정문 앞에는 노조 집회를 거부하고 회사 밖으로 나가려는 조합원들과 이를 저지하려는 노조 간부들 간에 실랑이가 벌어졌다.

한 조합원은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다"면서 "거의 대부분 조합원들이 무리한 정치파업에 반기를 들고 있는 데도 기어코 파업을 벌이면서 이젠 집으로 가려는 조합원들까지 반강제적으로 붙들고 있다"고 반발했다.

이날 공장 밖으로 나온 대다수 조합원들은 "이젠 노조가 벌이는 파업은 여간해선 참석하기 싫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조합원들의 이 같은 '반(反)파업 정서'는 이날 오전 현대차 울산공장 본관 광장에서도 여지없이 나타났다.

노조가 개최한 파업집회에 참석한 조합원은 2500여명으로,전체 주간조 조합원 1만4000명 중 17% 정도에 불과했다.

게다가 참석 인원 중 대의원과 소의원 등 노조간부가 상당수다.

일반 조합원들이 정치파업에 얼마나 염증을 느끼고 있는지를 방증하는 대목이다.

이와관련,합리주의 노동운동을 표방하는 현대차 신노련의 김창곤 대표는 "조합원들의 파업반대 정서를 제대로 읽지 않고 이렇게 기형적인 파업을 계속 벌이면 그 결과는 부메랑이 되어 노조에 되돌아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벌써부터 현대차 노조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이틀간 정치파업으로 입게 될 임금손실(1인당 평균 16만원)을 노조가 보상하라는 조합원들의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또 현대삼호중공업 노조원들이 금속노조의 파업 방침을 거부하고 정상 조업을 한 데 대해 노조 집행부가 지난 28일 전원 사퇴한 것을 들어 현대차 집행부도 조기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아이디가 '한국의 잔다르크'인 한 조합원은 "20년 노조 파업의 역사를 기록한 현대차 주가는 7만원대,무분규를 이어가는 현대중공업은 35만원대"라며 "명분 없는 정치파업 악수에 파업 동력을 떨어뜨리고,조합원들에게 고통만 가중시키는 노조 집행부는 전원 사퇴하라"고 주장했다.

이번 파업을 주도한 금속노조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산별 탈퇴'를 주장하는 글들도 잇따랐다. '스패너'라는 조합원은 "이번 파업은 명분없는 파업,현실에 맞지않는 파업으로 국민들에게 반드시 심판받을 것"이라며 산별노조에서 탈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노조가 조합원 위에 군림하고 있다" "권력에 맛이 들면 조합원이 눈에 보이지 않느냐"며 다음 노조위원장 선거에서 현장 조합원들의 냉엄한 심판이 내려질 것이란 경고성 글들도 눈에 많이 띄었다.

20년 노조 역사상 유례없는 '조합원들의 반란'에 부딪힌 노조 내부에는 위기의식이 감지되고 있다.

1987년 노조창립 이래 1994년 한 해를 제외하고 매년 되풀이된 파업에서 일사불란하게 집행부의 지침을 따랐던 조합원들이 지도부 방침을 거부하고 정상조업에 나서자 상당히 당황하고 있는 분위기다.

게다가 회사 측이 불법 파업을 주도한 혐의로 이상욱 지부장 등 노조 간부 23명을 경찰에 고소해 노조 지도부를 긴장시키고 있다.

하지만 회사 측은 노조 지도부의 이 같은 위기의식이 다음 달부터 본격화될 임·단협 협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주목하고 있는 눈치다.

노조가 내부분열을 막기위해 이번 임·단협을 앞두고 집안 단속에 본격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임·단협 안에는 기본급 8.9% 인상과 함께 정년을 58세에서 60세로 연장하는 방안 등 실제 조합원들의 고용과 임금에 직결된 내용이 포함돼 있다.

울산=하인식 기자 ha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