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품격' 있는 인천공항이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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咸仁姬 <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
미국도 6개월 미만 단기 체류 시엔 머지않아 무비자 입국이 가능해질 것이란 소식이다.
이른 새벽부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길게 늘어선 채 비자 인터뷰를 기다리던 미국 대사관 앞 행렬이 줄어들 모양이다.
해외여행이 휴가 양식의 하나로 자리 잡은 지금,많은 이들이 한번쯤은 국경을 넘나들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더불어 입국(入國) 심사대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고 해당 국가의 품위와 격조가 가감없이 드러남을 보며,'입국 심사장이야말로 그 나라의 얼굴'이란 말을 피부로 실감해 보았을 것이다.
3년 전,가족과 함께 베트남의 하롱베이와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유적지(遺跡地)를 여행한 적이 있다.
당시 하노이와 시엠립 국제공항에서 입국 절차를 밟았는데,두 곳 모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위압적 태도의 공항 직원들로 인해 불안감과 불쾌감이 교차했던 기억이 난다.
특히 시엠립에선 '급행료'를 바쳐야 했던 어처구니없는 경험도 했다.
하기야 그 급행료엔 우리네에게도 절반의 책임이 있었다.
하릴없이 죽치고 마냥 기다리는 건 도무지 참을 수 없는 데다 '급행료'의 효력에 익숙해있던 우리네로선,'1인당 1,2달러 정도야' 하는 마음에서 별 생각 없이 급행료를 지불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한데 이 급행료가 관행(慣行)으로 굳어지면서,일본인 중국인에겐 요구하지 않는 것을 한국인은 내야만 하고,관광객이라곤 달랑 한국인뿐이라 급행료가 무색한 상황에서도 급행료 없인 무사통과가 어려운 데야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지.
보름 전엔 마침 발칸 지역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삼면(三面)이 바다로 둘러싸인 데다 남북한 통행이 단절된 상황에서 자동차로 국경을 넘어본 적이 없었던 덕분인가,그 곳에서 국경을 넘나드는 경험은 꽤나 신선했다.
일단 국경 통과 방식이 직원의 손짓 하나로 통과되는 곳,직원이 탑승해 여권 대조 후 통과도장을 찍어주는 곳,모두 하차한 다음 직원 앞으로 가서 여권을 내민 후 통과 도장을 받아야 하는 곳,심지어는 모든 짐까지 샅샅이 검사받은 후 통과를 허락받아야 하는 곳까지 10국10색이었다.
어느 날인가는 동일한 국경을 세 번 통과해야 했는데 그 때마다 똑같은 절차를 반복해야 했던 해프닝도 있었다.
발칸지역에서 다소 특이했던 건 과거 사회주의 체제를 지나온 탓인지,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으레 "북한 출신인지 남한 출신인지"를 되묻는 경우가 많았던 점이다.
국경 통과 시에도 똑같은 질문이 예외없이 반복되기에,한 여행가이드가 "너희는 북한 사람들이 떼 지어 관광버스로 통과하는 것 본 적이 있느냐?" 하고 물었단다.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하라"는 퉁명스런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발칸지역의 국경을 넘나든 이번 여행에서도 국가마다 품격이 다름을 다시금 실감했고 그 품격은 역시 경제력과 함께 상승함을 확인했다.
나아가 자본의 무국경(無國境) 시대를 넘어 이젠 사람의 자유로운 이동,곧 이주(migration)의 세계화가 열렸음을 체감했다.
단 문제는 국가간 격차 및 불평등이 엄존하는 상황에서 명실공히 사람의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장벽이 만만치 않다는 점일 것이다.
이주를 둘러싸고 동일 영토 안에서도 국가의 논리와 시장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것이요,같은 시장 안에서도 거대 기업의 명분과 중소기업의 생존경쟁이 충돌할 것이니만큼,각 국경을 통과할 때마다 절대 환영하는 이주 노동력과 절대 사절인 불법 노동력이 공존함은 자명한 이치일 것이다.
"국경이 없어질 날이 올까요?" 일행 중 한 명의 질문에 '아직은 시기상조'란 의견이 대세를 이루긴 했으나,북한과는 '국경 아닌 국경'을 사이에 두고 있고 '가장 까다로운 입국심사 절차'를 자랑한다는 우리네로선,인천국제공항의 화려한 세련미 못지않게 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에 걸맞은 국경의 품위와 위상을 심각하게 숙고해야 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미국도 6개월 미만 단기 체류 시엔 머지않아 무비자 입국이 가능해질 것이란 소식이다.
이른 새벽부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길게 늘어선 채 비자 인터뷰를 기다리던 미국 대사관 앞 행렬이 줄어들 모양이다.
해외여행이 휴가 양식의 하나로 자리 잡은 지금,많은 이들이 한번쯤은 국경을 넘나들어 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더불어 입국(入國) 심사대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고 해당 국가의 품위와 격조가 가감없이 드러남을 보며,'입국 심사장이야말로 그 나라의 얼굴'이란 말을 피부로 실감해 보았을 것이다.
3년 전,가족과 함께 베트남의 하롱베이와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유적지(遺跡地)를 여행한 적이 있다.
당시 하노이와 시엠립 국제공항에서 입국 절차를 밟았는데,두 곳 모두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위압적 태도의 공항 직원들로 인해 불안감과 불쾌감이 교차했던 기억이 난다.
특히 시엠립에선 '급행료'를 바쳐야 했던 어처구니없는 경험도 했다.
하기야 그 급행료엔 우리네에게도 절반의 책임이 있었다.
하릴없이 죽치고 마냥 기다리는 건 도무지 참을 수 없는 데다 '급행료'의 효력에 익숙해있던 우리네로선,'1인당 1,2달러 정도야' 하는 마음에서 별 생각 없이 급행료를 지불하기 시작했을 것이다.
한데 이 급행료가 관행(慣行)으로 굳어지면서,일본인 중국인에겐 요구하지 않는 것을 한국인은 내야만 하고,관광객이라곤 달랑 한국인뿐이라 급행료가 무색한 상황에서도 급행료 없인 무사통과가 어려운 데야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지.
보름 전엔 마침 발칸 지역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
삼면(三面)이 바다로 둘러싸인 데다 남북한 통행이 단절된 상황에서 자동차로 국경을 넘어본 적이 없었던 덕분인가,그 곳에서 국경을 넘나드는 경험은 꽤나 신선했다.
일단 국경 통과 방식이 직원의 손짓 하나로 통과되는 곳,직원이 탑승해 여권 대조 후 통과도장을 찍어주는 곳,모두 하차한 다음 직원 앞으로 가서 여권을 내민 후 통과 도장을 받아야 하는 곳,심지어는 모든 짐까지 샅샅이 검사받은 후 통과를 허락받아야 하는 곳까지 10국10색이었다.
어느 날인가는 동일한 국경을 세 번 통과해야 했는데 그 때마다 똑같은 절차를 반복해야 했던 해프닝도 있었다.
발칸지역에서 다소 특이했던 건 과거 사회주의 체제를 지나온 탓인지,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으레 "북한 출신인지 남한 출신인지"를 되묻는 경우가 많았던 점이다.
국경 통과 시에도 똑같은 질문이 예외없이 반복되기에,한 여행가이드가 "너희는 북한 사람들이 떼 지어 관광버스로 통과하는 것 본 적이 있느냐?" 하고 물었단다.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하라"는 퉁명스런 답이 돌아왔다고 한다.
발칸지역의 국경을 넘나든 이번 여행에서도 국가마다 품격이 다름을 다시금 실감했고 그 품격은 역시 경제력과 함께 상승함을 확인했다.
나아가 자본의 무국경(無國境) 시대를 넘어 이젠 사람의 자유로운 이동,곧 이주(migration)의 세계화가 열렸음을 체감했다.
단 문제는 국가간 격차 및 불평등이 엄존하는 상황에서 명실공히 사람의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장벽이 만만치 않다는 점일 것이다.
이주를 둘러싸고 동일 영토 안에서도 국가의 논리와 시장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것이요,같은 시장 안에서도 거대 기업의 명분과 중소기업의 생존경쟁이 충돌할 것이니만큼,각 국경을 통과할 때마다 절대 환영하는 이주 노동력과 절대 사절인 불법 노동력이 공존함은 자명한 이치일 것이다.
"국경이 없어질 날이 올까요?" 일행 중 한 명의 질문에 '아직은 시기상조'란 의견이 대세를 이루긴 했으나,북한과는 '국경 아닌 국경'을 사이에 두고 있고 '가장 까다로운 입국심사 절차'를 자랑한다는 우리네로선,인천국제공항의 화려한 세련미 못지않게 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에 걸맞은 국경의 품위와 위상을 심각하게 숙고해야 하리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