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원씨(31·서울 방배동)는 2002년 경기 지역의 한 4년제 대학 경제학과를 나왔다.

전문성 없는 졸업장만으로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기 어렵다는 것을 깨닫는 데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처음에는 작은 부동산 컨설팅회사에서 경매 관련 업무를 했다.

이 회사의 영업이 어려워지자 버스 터미널 검표원으로 취직했다.

검표원의 전망이 밝지 않다고 느낀 최씨는 지난 3월에야 비로소 서울시가 무료 운영 중인 1년 과정의 직업학교(서울종합직업전문학교) 건축환경설비과에 다시 입학했다.

이곳에서 빌딩과 상가,아파트 단지 등 대규모 시설의 냉난방 설비 및 공조기 관련 기술을 익힌 뒤 평생 직업을 찾을 생각이다.

그는 "전문성을 살릴 수 있다면 중소기업 취직도 마다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최씨는 "처음부터 직업학교 같은 길을 선택했더라면 남들보다 6~7년씩 늦지 않았을 것"이라며 무작정 대학 입학과 졸업 후 방향없는 구직 시도를 후회했다.

최씨처럼 대학을 졸업하고도 한 동안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중소기업을 무조건 외면하는 풍조 때문에 대졸자는 실업자가 되고 중소기업들은 인력난에 허덕이고 있다.

채용포털 인크루트가 지난 5월 대기업 63개사,중견·중소기업 123개사를 대상으로 지난해 '신규 채용 현황'을 조사해봤다.

중견·중소기업은 채용 예정 인원의 77.7%밖에 뽑지 못했다.

그나마 입사 인원 중 28.5%는 1년도 안 돼 회사를 나가버렸다.

돈을 더주고 뽑은 대졸자가 2~3개월 만에 나가버리는 경우도 허다하다.

인건비도 비싼데다 잦은 이직으로 재교육 비용만 더 들어 경쟁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취업난 속 구인난의 원인은 뭘까.

표한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학력 인플레를 지목했다.

"학력 인플레로 직업에 대한 기대 수준이 높아지면서 고학력자들의 구직활동이 대기업에 집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졸자들이 갈 만한 일자리가 충분하기만 하다면 학력 인플레가 문제될 것은 없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일부 대기업은 이미 '고용 없는 성장'을 넘어 '고용을 줄이는 성장'을 하고 있다.

KT가 대표적이다.

KT가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사업보고서를 보면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5만6600명이던 이 회사 직원 수는 지난해 3만7514명으로 33.7%나 줄었다.

사무직 인력만 놓고 봐도 1만1380명에서 8893명으로 21.9% 감소했다.

반면 이 기간 매출은 8조7739억원에서 11조7720억원으로 34.2% 늘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은 지난해 '중장기 인력 수급 전망' 보고서에서 2015년까지 노동시장에 전문대졸 이상 학력자 54만8000명이 초과 공급될 것으로 전망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고학력자들은 여전히 대기업이나 공기업 공무원 같은 '번듯한' 직장에만 몰리고 있다.

대전지역 사립대에 다니는 박모씨(27·회계학과)는 올 상반기에 대기업에만 네 군데 원서를 냈고 이 중 세 곳은 면접까지 가보지도 못했지만 계속 대기업을 노릴 생각이다.

그는 "중소기업은 불안해보인다"고 했다.

올초 국민 우리 등 시중은행의 창구직(금전출납원) 모집에는 석·박사 출신을 비롯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이른바 명문대 출신까지 대거 몰려 채용 담당자들을 놀라게 했다.

창구직 연봉은 2200만~2300만원 정도로 '괜찮은 중소기업' 수준이지만 경쟁률은 우리은행이 30 대 1,국민은행이 36 대 1에 달했다.

정규직 전환 가능성이 부각되면서 작년보다 경쟁률이 두 배나 치솟았다.

과거 고졸 출신이 주로 보던 9급 공무원 시험도 이미 대졸자들 차지가 돼버렸다.

서울시 9급 합격자 중 4년제 대졸 이상 학력자는 1996년 60.9%에서 지난해에는 90.4%로 치솟았다.

수도권의 한 지방대생은 "'칼퇴근'에 정년 보장되고 학벌 상관없이 시험 성적으로만 뽑으니까 공무원의 인기가 높다"며 "1학년 때부터 고시원에 들어가는 학생이 부지기수고 공무원 시험 특강에는 빈 자리가 없다"고 말했다.

대학생들의 중소기업 기피 현상을 해소하려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 등이 줄어야겠지만 이와 함께 대학과 학생들의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중소기업과의 철저한 산학 협력으로 최근 6년 연속 취업률 100%를 기록한 한국산업기술대학교의 송영승 홍보과장은 "솔직히 눈높이를 낮추고 싶은 대학생이 어디 있느냐.우리는 '눈높이를 다양화하라'고 얘기한다.

시야를 넓히면 괜찮은 중소기업이 많다"며 "취직하려는 학생들에게 중소기업에 대한 마인드를 바꿔주는 게 대학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김수언/주용석 기자 indep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