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 奎 載 <논설위원ㆍ경제교육연구소장 >

구성의 오류는 부분의 합리성이 전체의 불합리를 만들어내는 역설적 상황을 말한다.

극장에서 한 사람이 무대를 잘 보기 위해 일어서면 결국 모두가 따라 일어서게 되는 사례로 잘 설명되는 상황이다.

폴 새뮤얼슨은 불황기의 저축이 소비를 줄인 다음 돌고 돌아 결국엔 소득마저 감소시키는 저축의 패러독스를 구성의 오류로 분석한 적도 있다.

구성의 오류는 합성의 오류라고도 한다.

영어로는 fallacy of composition이다.

호랑이 발톱과 상어 이빨, 코끼리 다리, 치타의 허리를 모두 합성한다고 해서 잘 달리고 잘 물어뜯는 고등 동물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최고 수준의 솔리스트를 끌어모았다고 해서 좋은 오케스트라가 되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지난주 권오규 경제부총리는 은행장들을 모아놓고 일장 훈시를 하면서 이 구성의 오류라는 개념을 유독 강조했다고 한다.

은행들이 협소한 국내 시장에서 제 살 깎아먹는 경쟁만 벌이지 말고 골드만 삭스 같은 투자은행으로 변신하고 후진국 금융시장에 진출해 돈도 벌어오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은행들의 제한적인 경쟁을 구성의 오류라고 말할 수 있을지부터 잘 모르겠다.

정부의 금융정책을 구성의 오류라고 말할지언정 경쟁 자체를 구성의 오류라고 할 수는 없다.

더구나 은행 영업은 담합이 문제일 망정,별달리 치열한 경쟁이 있는 것도 아니다.

IMF 외환위기 이후 기업 대출을 줄이고 은행들이 가계대출 시장에만 머리를 들이밀고 치고받도록 만든 것은 바로 정부다.

대기업 대출이 20조원대로 줄었고 가계대출이 600조원으로 늘어난 것은 정부의 기업부채비율 200% 규제 정책이 만들어 낸 구성의 오류다.

기업 재무 건전성과 엄격한 은행 리스크 관리가 합성된 결과는 은행과 기업의 연결고리가 완전히 끊어져 버린 작금의 상황으로 귀결되었다.

기업과 은행의 연결이 끊어진 상태에서 투자은행 업무라니 실로 가당치 않다.

투자은행 업무는 가계 아닌 기업 고객과의 긴밀한 관계가 필수적이다.

그래야 기업공개도 주선하고 회사채와 주식도 인수하고 M&A도 중개할 것이 아닌가 말이다.

이런 것 말고 투자은행 업무가 따로 있다면 말해보라.

가계대출 전문 은행이었던 국민은행이 우량은행이 되고 기업대출을 영위하던 은행들은 모조리 문을 닫게 된 어제까지의 경험은 어디에 두고 지금에 와서 갑작스런 투자은행인지 권 부총리는 진정 알고 그런 것인지 모르고 그런 것인지.해외로 나가서 장사하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국내 은행들의 경영권 지분을 깡그리 외국인에게 넘긴 것은 선진 금융기법 도입을 소리쳐 외치던 바로 정부다.

외국인들이 국내 은행주식을 매입한 것은 한국내 영업을 탐낸 것이지 결코 그 반대가 아니다.

그러니 경영진은 몰라도 외국인 주주들은 굳이 밖으로 나가야 할 까닭이 없다.

역시 잘못된 '구성'이다.

증권정책도 구성의 오류이기는 마찬가지다.

경영 투명성을 이토록 원리주의적으로 강조한 나라는 한국뿐이다.

대주주 홀대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니 제정신 있는 기업이라면 상장을 꺼리고 투자도 꺼리게 되어 있다.

기업들이 증권시장에서 조달하는 자금보다 배당과 자사주 매입으로 지출하는 자금이 더 많은 나라에서 투자은행이 무슨 할 일이 있겠는가.

그러니 정신분열증적 증권정책도 구성의 오류다.

그렇게 10년을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은행과 기업,증권시장과 투자은행의 연결고리가 모두 끊어져 버린 구성의 오류는 다름 아닌 재경부가 만든 것이다.

그러니 지금에 와서 국영기업이라도 상장해야겠다는 말을 정부 스스로가 내뱉고 있지 않은가.

모순된 단어를 아무렇지도 않게 주워섬기는 것은 참여정부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좌파 신자유주의' 정권이라는 실로 기괴한 '구성의 오류'적 용어를 만들어내기까지 했지만 참여정부의 정책과 각료 구성부터가 실은 합성의 오류다. 얼치기 좌파와 기회주의 우파를 합성해 놓은 것이 지금의 내각이다.

투자은행의 핵심경쟁력은 유연한 고용과 성과 보상이다. 참여정부의 친노정책이 그것조차 막고 있다는 것은 권오규씨도 잘 알 것이고. 대통령은 대학총장을,재경장관은 은행장을 모아 놓고 서로 다른 양극단의 철학을 피력하고 있는 것부터가 구성의 오류다.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