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 인플레의 늪에 빠진 한국] (2) "신입생은 돈‥교육은 나몰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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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한 사립대학 경제학과 4학년생 박상진씨(27)는 졸업을 앞둔 여느 대학생처럼 취업이 최대 고민이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대기업에서 영업이나 무역쪽 일을 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높은 취업 문턱을 넘을 자신이 없어 졸업이 두렵기만 하다.
군산대의 K교수는 박씨처럼 대학 문을 나선 후 실업을 걱정하는 학생들이 많은 이유로 기대 이하의 대학 교육을 꼽았다. K교수는 "대졸 실업난에는 사회가 대졸자에게 요구하는 최소한의 소양이나 자질조차 갖추지 못한 채 졸업하는 학생이 부지기수라는 데도 큰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학이 많아지면서 지방에서는 학생들 간 입시경쟁이 아니라 교수들 간 학생 충원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진다"며 "이 때문에 대학에 오지 않아도 될 학생들까지 무차별적으로 들어오고 있고 대학교육의 질은 형편없이 낮아졌다"고 말했다.
최고 인기 직장으로 우수인력을 주로 뽑아가는 삼성전자조차도 신입사원 재교육비로 연간 2000억원을 쓰고 있다. 교육프로그램에는 회사 입문교육에서부터 기술인력을 위한 기초 및 필수 기술교육 등이 총망라된다. 이 회사의 한 기술면접위원은 "기초 물리이론도 모르는 이공계 신입사원도 있다"며 "전공 실력이 예전보다 많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경영자총협회 조사를 보면 국내 기업들이 대졸 신입사원 재교육비로 쓰는 돈만 연간 4조8000억원이나 된다. 신입사원 1인당 재교육비만 6200만원 꼴이다.
대학교육 부실은 2003년께부터 입학정원(전문대 포함)이 고교 졸업자 수를 넘어설 정도로 대학이 양적 팽창을 거듭해 온 것과 무관치 않다. 2006년의 경우만 해도 인문계와 전문계고를 합친 전체 고교 졸업생이 56만8000여명으로 대학 입학정원(교육대 및 산업대 포함) 59만명보다 적었다.
◎대학통폐합은 고작 6건
이러다보니 정원을 채우지 못해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대학이 계속 늘고 있다. 특히 지방 사립대들은 평균적으로 학교 운영비의 80% 이상을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정원 미달은 재정난에 이은 대학 본연의 교육기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순영 민주노동당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모집정원의 80%도 뽑지 못한 4년제 대학은 전체 175개교 중 31개교,전문대학은 전체 152개교 중 38개교에 달했다. 지역별로는 수도권보다 지방,운영 주체별로는 국.공립보다 사립이 더 심각하다. 대전 한남대 관계자는 "대학들 사이에 정원을 못 채우는 대학 분포선이 남부 지방에서 시작돼 현재 대전권까지 올라왔고 조만간 서울 바로 아래 경기 지역까지 확대될 것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며 "결코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실제 상황"이라고 전했다.
정부는 이에 따라 2004년 말부터 대학 통.폐합 및 정원 감축,특성화 대학 육성 등을 담은 '대학구조개혁 방안'을 시행 중이다. 현재까지 입학정원을 4만8000명가량 줄였고 몇몇 대학이 통폐합됐다. 그러나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국립대 통.폐합의 경우 부산대의 밀양대 통합 등 6건의 성과가 있었고 2~3건의 추가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정부가 내심 바라는 '1도(道) 1국립대' 체제로 가기에는 갈 길이 멀다.
◎지방사립대 문제 심각
지방 사립대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사립대는 1990년 이후 대학이 양적 팽창을 거듭하게 된 진원지이고 학생 부족으로 재정 위기에 봉착한 사례도 많지만 퇴출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2004년 이후 고려대와 고대 병설 보건대학의 통합 등 학교재단이 같은 6건의 통폐합이 있었을 뿐이다. 지난해 말 현재 전국의 사립대학은 전문대 139개,4년제 대학 159개(산업대 및 기술대학 포함) 등 300개에 육박,교육대 등을 포함한 전체 대학의 85%를 차지하고 있다.
지방대 교수를 지낸 A씨는 "대다수 지방 사립대들은 3000~4000명 정도의 재학생만 있으면 등록금 수입으로 대학을 운영할 수 있다고 보고 학생 유치에만 열을 올린다"며 "이들을 제대로 교육시키기 위한 투자는 생각하지도 못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부실 대학이 부실 대졸자를 양산하면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이 엄청난 만큼 부실 대학의 통폐합을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사립대학의 통폐합으로 법인이 해산되면 출연 재산이 국고에 귀속돼 법인이 다른 대학 간의 통폐합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교육부는 출연재산 일부를 돌려주는 문제를 검토했지만 오래된 재단의 경우 재산평가 및 귀속결정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서울대 김대일 교수(경제학과)는 "거의 모든 한국 대학들은 고등학교의 연장선에서 교육을 하고 있다는 게 문제"라며 "학생 선발에서부터 등록금 책정 등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사안을 일일이 규제를 받는 방식으로는 경쟁력을 갖는 대학별 특성화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지방 사립대인 한중대(강원도 동해시)의 한 교수는 "한 예로 국선도건강과학과나 춤.대중예술학과 등 4년제 교육과정으로 적합한지 의문이 드는 학과들을 만드는 지방대들이 숱한데 모두 입학생들의 관심을 끌어 연명하기 위한 것"이라며 "전문대인지 4년제 대학인지 구분조차 힘든 지방사립대 통합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수언/주용석 기자 indepth@hankyung.com
군산대의 K교수는 박씨처럼 대학 문을 나선 후 실업을 걱정하는 학생들이 많은 이유로 기대 이하의 대학 교육을 꼽았다. K교수는 "대졸 실업난에는 사회가 대졸자에게 요구하는 최소한의 소양이나 자질조차 갖추지 못한 채 졸업하는 학생이 부지기수라는 데도 큰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학이 많아지면서 지방에서는 학생들 간 입시경쟁이 아니라 교수들 간 학생 충원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진다"며 "이 때문에 대학에 오지 않아도 될 학생들까지 무차별적으로 들어오고 있고 대학교육의 질은 형편없이 낮아졌다"고 말했다.
최고 인기 직장으로 우수인력을 주로 뽑아가는 삼성전자조차도 신입사원 재교육비로 연간 2000억원을 쓰고 있다. 교육프로그램에는 회사 입문교육에서부터 기술인력을 위한 기초 및 필수 기술교육 등이 총망라된다. 이 회사의 한 기술면접위원은 "기초 물리이론도 모르는 이공계 신입사원도 있다"며 "전공 실력이 예전보다 많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경영자총협회 조사를 보면 국내 기업들이 대졸 신입사원 재교육비로 쓰는 돈만 연간 4조8000억원이나 된다. 신입사원 1인당 재교육비만 6200만원 꼴이다.
대학교육 부실은 2003년께부터 입학정원(전문대 포함)이 고교 졸업자 수를 넘어설 정도로 대학이 양적 팽창을 거듭해 온 것과 무관치 않다. 2006년의 경우만 해도 인문계와 전문계고를 합친 전체 고교 졸업생이 56만8000여명으로 대학 입학정원(교육대 및 산업대 포함) 59만명보다 적었다.
◎대학통폐합은 고작 6건
이러다보니 정원을 채우지 못해 운영에 어려움을 겪는 대학이 계속 늘고 있다. 특히 지방 사립대들은 평균적으로 학교 운영비의 80% 이상을 등록금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정원 미달은 재정난에 이은 대학 본연의 교육기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최순영 민주노동당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모집정원의 80%도 뽑지 못한 4년제 대학은 전체 175개교 중 31개교,전문대학은 전체 152개교 중 38개교에 달했다. 지역별로는 수도권보다 지방,운영 주체별로는 국.공립보다 사립이 더 심각하다. 대전 한남대 관계자는 "대학들 사이에 정원을 못 채우는 대학 분포선이 남부 지방에서 시작돼 현재 대전권까지 올라왔고 조만간 서울 바로 아래 경기 지역까지 확대될 것이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며 "결코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실제 상황"이라고 전했다.
정부는 이에 따라 2004년 말부터 대학 통.폐합 및 정원 감축,특성화 대학 육성 등을 담은 '대학구조개혁 방안'을 시행 중이다. 현재까지 입학정원을 4만8000명가량 줄였고 몇몇 대학이 통폐합됐다. 그러나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국립대 통.폐합의 경우 부산대의 밀양대 통합 등 6건의 성과가 있었고 2~3건의 추가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정부가 내심 바라는 '1도(道) 1국립대' 체제로 가기에는 갈 길이 멀다.
◎지방사립대 문제 심각
지방 사립대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사립대는 1990년 이후 대학이 양적 팽창을 거듭하게 된 진원지이고 학생 부족으로 재정 위기에 봉착한 사례도 많지만 퇴출이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2004년 이후 고려대와 고대 병설 보건대학의 통합 등 학교재단이 같은 6건의 통폐합이 있었을 뿐이다. 지난해 말 현재 전국의 사립대학은 전문대 139개,4년제 대학 159개(산업대 및 기술대학 포함) 등 300개에 육박,교육대 등을 포함한 전체 대학의 85%를 차지하고 있다.
지방대 교수를 지낸 A씨는 "대다수 지방 사립대들은 3000~4000명 정도의 재학생만 있으면 등록금 수입으로 대학을 운영할 수 있다고 보고 학생 유치에만 열을 올린다"며 "이들을 제대로 교육시키기 위한 투자는 생각하지도 못한다"고 꼬집었다.
그는 "부실 대학이 부실 대졸자를 양산하면서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이 엄청난 만큼 부실 대학의 통폐합을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사립대학의 통폐합으로 법인이 해산되면 출연 재산이 국고에 귀속돼 법인이 다른 대학 간의 통폐합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교육부는 출연재산 일부를 돌려주는 문제를 검토했지만 오래된 재단의 경우 재산평가 및 귀속결정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서울대 김대일 교수(경제학과)는 "거의 모든 한국 대학들은 고등학교의 연장선에서 교육을 하고 있다는 게 문제"라며 "학생 선발에서부터 등록금 책정 등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사안을 일일이 규제를 받는 방식으로는 경쟁력을 갖는 대학별 특성화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지방 사립대인 한중대(강원도 동해시)의 한 교수는 "한 예로 국선도건강과학과나 춤.대중예술학과 등 4년제 교육과정으로 적합한지 의문이 드는 학과들을 만드는 지방대들이 숱한데 모두 입학생들의 관심을 끌어 연명하기 위한 것"이라며 "전문대인지 4년제 대학인지 구분조차 힘든 지방사립대 통합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김수언/주용석 기자 indept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