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뮤지컬 기획사의 공연기획 담당인 A씨는 요즘 고민이 많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하루에 한두 번은 투자 제의 전화를 받았지만 최근엔 작품 기획안을 들고 직접 찾아가도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는 곳이 대부분이다.

A씨는 "예전엔 뮤지컬을 만든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투자를 유치할 수 있었지만 요즘은 관객도,투자자도 눈높이가 높아져서 스타급 배우가 출연하거나 이미 알려진 유명 작품이 아니면 자금을 모으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뮤지컬 시장이 이른바 '레드오션'으로 접어들고 있다.

뮤지컬 기획사가 우후죽순으로 생기면서 해외수입 작품에 내는 라이선스비 증가,스태프 부족에 따른 작품의 질 저하 등으로 제살깎기 경쟁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기획사들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데만 급급한 데다 공연의 질도 개선되지 않아 뮤지컬 투자사들이 몸을 사리고 있는 추세다.

인터파크ENT에 따르면 올 상반기에 막을 올린 국내 성인 뮤지컬 작품은 137편으로 지난해 전체 작품 161편(한국문화예술위원회 집계)과 비교하면 엄청난 증가세다.

이 가운데 국내 창작물은 77편으로 지난해보다 두 배가량 늘었다.

라이선스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뮤지컬 제작사들이 작품성이 검증되지 않은 창작 뮤지컬을 마구잡이로 올리고 있는 것.실제로 인터파크ENT 집계 결과 올 상반기 뮤지컬 티켓 판매 20위권에 오른 창작 뮤지컬은 두 편에 불과하다.

뮤지컬 투자사인 골든브릿지의 서정기 이사는 "최근 들어 작품의 완성도가 낮은 공연들이 너무 많이 올라오다 보니 투자자들도 예전과 달리 투자 기준을 좀더 까다롭게 만들어 시장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작품성에서는 라이선스 공연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라이선스 공연의 성패는 얼마만큼 한국시장에 맞게 각색하고 연출하느냐에 달려 있는데,연출가와 작가 등 스태프들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실제 2~3년 새 각 대학에 12개의 뮤지컬연기학과가 생겼지만 연출이나 작곡부문은 전무한 상태다.

고양아람누리극장의 조용환 무대감독은 "뮤지컬을 제작할 때 무대 제작,조명,음향까지 분야마다 10년 이상의 경험을 가진 사람이 3명씩은 있어야 하지만 인원이 부족해 1명이 컨셉트 회의 때 잠시 참석하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기획사가 급증하면서 수입공연 라이선스 비용도 '부르는 게 값'이다.

미국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사춘기'는 2년 전에 비해 무려 다섯 배나 뛰었다.

한 기획사 대표는 "'사춘기'가 토니상 수상 작품이긴 하지만 다섯 배나 뛴 것은 국내사 간 경쟁이 과열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분석했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