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侖 錫 < 금융연구원 연구위원 >

얼마 전 인터뷰차 만났던 언론사 기자가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원·엔 환율 하락과 관련해 일본에 수출하는 중소기업과의 인터뷰가 여간 어렵지 않다는 것이었다.

이유를 물어본즉 언론에 수출 중소기업 대표가 나올 경우 주 거래은행으로부터 당장 전화가 걸려온다는 것이다.

원·엔 환율 하락으로 인해 채산성이 악화돼 혹시나 회사 운영이 어려워진 게 아니냐는 문의 전화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필자는 이런 얘기를 듣고 단순히 기업 대표가 언론에 나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부실 대출을 우려하는 현실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물론 은행들의 이런 우려에 대해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바가 없지는 않다.

중소 수출기업들의 경우 연일 계속되고 있는 원·엔 환율 하락으로 수출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780원대를 오르내리던 원·엔 환율이 지난주엔 747원대까지 주저앉았는데 이는 1997년 5월 이후 최저치이니 10년 전의 원·엔 환율 수준으로 돌아간 셈이다.

이와 같은 엔화 대비 원화의 '거침없는 하이킥'으로 중소기업중앙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현재 전체 수출 중소기업의 약 13%가 적자 수출을 감내하고 있다고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은행들이 부실 대출에 대한 우려를 할 만도 하나 이 기회에 은행의 역할과 중소기업의 대응을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은행의 기본적인 역할 중 하나가 자금 공여자와 수요자 간에 존재하는 정보의 비대칭성을 해소해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해 대출자에 대한 정보가 부족한 예금자들은 은행에 돈을 맡기고 은행은 대출 심사를 바탕으로 이를 적절한 사업자에게 대출해 주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대출 심사는 어떻게 보면 은행의 고유 기능이자 가장 중요한 기능이라고 할 수 있다.

원·엔 환율 하락으로 수출 기업이 어려움을 겪을 때 은행의 입장에서는 대출 회수가 가장 손쉬운 해결책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자금이 가장 필요한 시점에서 수출 기업들을 싸늘하게 외면한다면 중소기업 금융의 본질인 이른바 '관계형(關係型) 금융'은 요원한 이야기가 되어 버린다.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240만대의 판매 대수를 기록한 모 전자회사의 LCD(액정표시장치) TV는 협력업체의 핵심 기술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이 중소기업은 관련 기술을 독점하고 있는 일본으로 연수생을 파견하는 등 수년간의 노력 끝에 핵심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고 한다.

또한 감각적인 스테인리스 디자인으로 전 세계적인 히트 상품이 된 휴대폰도 한 중소기업의 끈질긴 기술개발 의지에 따른 결과다.

이렇듯 우리 중소기업들은 대기업과 상생 체제를 구축할 경우 우리 경제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톡톡히하고 있다.

따라서 은행들도 거래 업체들에 운영상 어려움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대출 회수부터 고려하기보다는 거래 업체에 대한 철저한 심사를 바탕으로 회수 여부 결정에 보다 신중해야 한다.

중소기업들의 자금난이 일시적인 운전자금 부족 등과 같은 유동성 요인인지 아니면 장기적으로도 성장 가능성이 없는 분야여서 구조조정을 요하는 분야인지 등을 조언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중소기업 스스로 환율 하락에 따른 어려움을 타개하려는 노력 없이는 이러한 은행들의 도움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정부를 비롯해 각계에서 환위험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지만 우리 중소기업들은 아직도 환위험 관리를 소홀히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은행들이 성장성이 유망한 중소기업을 지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기술력 없이 가격경쟁력 하나만 바라보고 정부의 환율 방어를 주문하는 안이한 중소기업들까지 챙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올 들어 주식시장에서 신고가를 기록한 종목이 125개나 된다고 한다.

엔화 대비 원화의 '거침없는 하이킥'은 우리 주식시장에서 지수를 비롯해 다수의 종목들이 연일 신고가 행진을 펼치고 있는 것을 연상케 한다.

단순히 환율,주가의 신고가 행진으로 끝날 게 아니라 현재를 기회로 삼아 은행과 중소기업이 자신의 역할과 역량에 충실하게 임하는 '신기원'을 이루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