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가족끼리 똘똘 뭉쳐 경영하는 '가족기업'은 나쁘다고 지적한다.

가족기업은 자본과 경영이 분리돼 있지 않아 경영 성과를 올리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게 그 이유다.

더욱이 가족경영이란 시대에 뒤떨어진 후진국 경영 방식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가족경영이 무조건 나쁘다고 하는 것은 철지난 경영학 교과서에 나오는 잘못된 이론이다.

일단 '가족경영은 후진국형 경영'이라는 것이 맞는 말인지 짚어보자.최근 대한상의가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기업 수에 대한 가족기업 수의 비중이 미국 54.5%,영국 76%,호주 75%,스페인 71% 등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보면 선진국 기업의 절반 이상이 가족기업인 셈이다.

물론 한국도 전체 기업의 68.3%가 가족기업이다.

이런 기준으로 볼 때 미국의 월마트,이탈리아의 베네통,일본의 도요타,독일의 BMW,영국의 세인스베리 등 세계적인 선진 기업들이 여기에 속한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천이 선정하는 세계 500대 기업 가운데 37%가 가족경영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런 가족기업들의 국가경제적 기여도는 놀라울 정도다.

독일의 경우 국내총생산(GDP)에서 66%를 가족기업이 차지한다.

미국도 30% 수준이다.

가족기업이 고용하는 근로자의 비중도 독일의 경우 75%에 이른다.

가족기업이 비가족기업보다 우수한 경영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여기서는 이탈리아의 대표적 가족기업인 베네통의 경우를 소개한다.

이탈리아 트레비소에 베네통이란 이름을 가진 트럭운전사가 있었다.

그에겐 루치아노,길리아나,길베르토,카를로 등 4남매가 있었다.

이 트럭운전사는 맏아들인 루치아노가 열 살이던 때 세상을 뜨고 말았다.

이로 인해 루치아노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세 명의 동생을 먹여 살려야 했다.

그는 동생의 자전거와 자신의 아코디언을 팔아 편직기를 하나 샀다.

1955년의 일이다.

그는 솜씨가 좋은 여동생 길리아나에게 편직기로 스웨터를 짜게 해 시장에 내다 팔았다.

그는 보통 스웨터들이 흰색이나 갈색 검정색 등 단색인 것을 탈피하기 위해 현란한 색깔의 제품을 만들었다.

이 스웨터가 잘 팔리자 그의 남동생인 길베르토와 카를로도 이 사업에 동참했다.

1965년 베네통 남매들은 벨루노에 첫 점포를 열고 폰자노에 두 번째 점포를 열면서 브랜드를 베네통으로 정했다.

다음해에는 파리에 점포를 열었다.

현재 베네통은 4형제가 함께 경영하는 전형적인 가족기업이다.

이미 루치아노의 아들인 알레산드로와 로코도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 회사는 가족 모두가 경영에 참여하는데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이미 연간 매출이 2조원에 달했으며 전 세계 매장이 7000개를 넘어섰다.

종업원 수도 8000여명에 이른다.

이 회사가 이렇게 높은 경영 성과를 올리고 있는 것은 가족들이 함께 끊임없이 혁신을 추진한 덕분이다.

이 회사는 가족기업들이 자칫 빠지기 쉬운 보수성은 절대 허락하지 않는다.

이 회사의 성장 원동력으로 보통 독특한 컬러 디자인을 꼽는다.

하지만 이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이 회사의 광고전략이다.

선천성면역결핍증(AIDS) 환자가 죽어가는 모습을 광고로 활용하는가 하면 흑인 여성이 백인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장면을 광고로 쓰기도 했다.

패션 사진작가 올리비에르 토스카나를 광고 책임자로 발탁,사회적 이슈를 파격적으로 다룬 광고로 소비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킨 것이다.

덕분에 전 세계에 베네통만의 독특한 기업 이미지를 인식시킬 수 있었다.

사실 베네통의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또하나의 경영 혁신은 물류다.

이 회사는 20시간 안에 1만5000여개의 박스를 입·출고할 수 있는 최첨단 물류센터를 갖추었다.

또 항공편으로 전 세계 어디든지 20시간 안에 배달할 수 있는 물류 시스템을 완비했다.

베네통의 경영 전략은 미국 하버드대와 스탠퍼드대 등에서 경영학 교재로까지 채택되고 있다.

이 회사 하나만 보더라도 가족기업이 무조건 경쟁력이 없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가족기업은 △거래 기업과의 오랜 신뢰관계 △축적된 기술력 △주인 의식 △강력한 리더십 △사회적 책임감 등 다양한 장점을 가졌다.

독일은 이런 가족기업의 장점을 살려주기 위해 가족들이 경영을 승계할 경우 상속세를 감면하는 제도를 최근 마련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가족기업에 대한 과다한 상속세 부과 등으로 인해 가족기업의 성장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런 폐단을 없애기 위해 한국경제 중소기업연구소는 중소기업청과 공동으로 가족기업과 경영을 승계하는 기업에 대해 상속세를 감면해주는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이치구 한국경제 중소기업연구소장 rh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