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도 초고속인터넷 유선전화 인터넷전화 이동전화 방송 등을 다양하게 묶어 파는 이른바 '결합상품'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그동안 후발사업자들만 할 수 있었던 결합상품을 지난 7월1일부터 KT SKT 등 소위 시장지배적 사업자들도 요금할인과 함께 시장에 내놓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사업자들도,소비자들도 규제완화를 환영하고 있다.

과연 소비자는 요금인하 효과를,또 사용자는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인가.

역사적으로 결합상품만큼 논쟁이 많았던 이슈도 많지 않다.

미국에서 몇 십년 전까지만 해도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상품을 묶어 파는 것 자체가 위법이었다.

그러나 사회적 후생 측면에서 꼭 그렇게만 단정할 수 없는 결합상품들이 나오면서 반독점법도 변화하기 시작했다.

이른바 '합리의 원칙(rule of reason)'이 등장한 것이다.

케이스마다 합리적으로 따져 판단하겠다는 의미다.

그 유명한 마이크로소프트(MS)에 대한 반독점법 위반소송도 실은 결합상품 때문이었다.

당시 웹브라우저 시장에서 선두를 달리던 넷스케이프를 몰아내기 위해 MS가 독점적으로 장악하고 있는 윈도에 자사의 웹브라우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부당하게 결합했다는 것이다.

과거 같으면 당연히 위법이었겠지만 기술과 시장 환경이 크게 달라진 만큼 논쟁은 치열했고,결국 적당한 타협 선에서 끝났다.

이론적으로도 엇갈린다.

어떤 경제학자는 결합상품을 허용하면 어느 한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기업이 다른 시장으로 그 지배력을 확대할 것이라고 주장한다(소위 지렛대 이론).그러나 또 다른 경제학자(이른바 시카고 학파)는 결합상품이 반드시 독점력을 다른 시장으로 확장할 만한 인센티브로 작용하는 것은 아니라며 반박한다.

따지고 보면 이런 논쟁 자체가 결합상품에 대한 경직적 규제의 문제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합리의 원칙'에 따라 2004년에 결합상품을 포괄적으로 허용했다.

그러나 시장지배적 사업자들에는 그림의 떡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점에서 이들에게 요금할인 결합상품을 정부가 이번에 허용한 것은 의미 있는 규제완화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사업자도,소비자도 앞으로 웃을 일만 남았는가.

아쉽게도 아직은 선뜻 답을 내놓기가 어렵다.

먼저 사업자를 보자.이미 성숙된 시장에서는 결합상품을 통한 가격경쟁을 잘못 벌이다 보면 수익성이 악화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사업자가 공격적으로 나서려면 결합상품 허용 정도로는 부족해 보인다.

초고속인터넷,유선·무선·인터넷전화,방송 등 전 영역에 걸쳐 진입장벽을 없애고,자유롭게 새로운 서비스를 도입할 수 있도록 해 줘야 한다.

당연히 산업의 구조개편도 가능해야 한다.

핵심규제의 완화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럼 소비자는 어떨까.

지금 통신요금에 불만이 많은 소비자들로서는 무엇보다 요금을 대폭 할인한 결합상품들이 쏟아지길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사업자들의 경쟁동기에 한계가 있는데다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요금인가나 단말기 보조금 규제 등을 계속 받고 있는 한 요금인하는 기대에 못 미칠 가능성이 크다.

한마디로 지금의 결합상품 허용은 반쪽짜리 규제완화다.

자칫 승자 없는 게임으로 끝날 수도 있다.

안현실 논설위원·경영과학博 ah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