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正浩 < 자유기업원장 >

필자가 미국에 유학 중일 때다.

미국인 친구의 차를 얻어 타고 가던 중이었다.

우선멈춤 표지를 어겼다고 경찰이 단속을 하자,그런 적 없다고 버티는 이 친구와 시비가 붙었다.

약식재판이긴 하지만 급기야 법정으로 가게 됐고,허름해 보이는 변호사까지 동원했다.

다행히 결과는 그 친구의 승리로 끝났다.

그때 변호사 수임료가 50달러라는 사실이 잊혀지지 않는다.

20년 전의 50달러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 돈의 가치가 지금 우리 돈으로 10만원을 넘지 않음은 확실할 것 같다.

국민소득이 우리보다 훨씬 높은 미국에서 겨우 그 돈을 받고 변호해주는 변호사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수천만달러를 수임료로 받는 사람도 있지만 10만원도 안 되는 수임료로도 사건을 맡는 변호사가 있는 것이 미국 변호사업계의 현실이다.

우리의 변호사는 격(格)이 높다.

아무리 하찮은 사건이라도 200만원 밑으로 받는 변호사는 아마 없을 것이다.

게다가 그런 싸구려 사건이라면 의뢰인이 홀대받기 일쑤이고,별로 신경도 써주지 않아서 결국 변론문도 실질적으로는 의뢰인이 작성하기 십상이다.

이건 필자만 겪은 것이 아니라 소액사건을 맡기는 우리나라 법률 소비자들 대부분의 처지라고 봐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푸대접의 원인은 법조인의 숫자가 너무 적다는 데에 있다.

2005년을 기준으로 했을 때 인구 1만명당 우리나라 변호사의 숫자는 1.7명인데,미국은 37.3명이다.

우리보다 20배 가량 더 변호사의 숫자가 많으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고,수임료도 낮아진다.

물론 실력 있는 변호사는 엄청난 수임료를 받지만,승소하는 금액에 대한 비율로 따지면 아마도 우리보다 높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다.

우리가 미국 정도의 변호사 숫자를 유지하려 한다면 앞으로 15년간 매년 1만명씩을 뽑아야 한다.

1년에 1000명 뽑는 것도 많다고 아우성인 변호사들이 10배를 더 뽑자는 말을 들으면 기절초풍하겠지만,엄연히 그것이 사실이다.

변호사 수가 많아질수록 능력 없는 변호사가 많아진다는 반대 논리는 터무니 없다.

그러면 수가 적은 한국의 변호사들이 숫자가 많은 미국 변호사보다 더 실력이 있다고 말할 수 있나.

변호사든 누구든 간에 실력은 경쟁이 치열할 때 비로소 생겨나기 시작한다.

로스쿨을 가지고 다툴 일이 아니다.

변호사의 숫자를 늘리는 것이 문제해결의 핵심이다.

사법시험을 없애고 로스쿨 제도로 바꾸더라도 뽑는 변호사의 수를 현재처럼 1000명 수준으로 묶어 둔다면 소비자들이 받는 푸대접은 달라질 것이 없다.

로스쿨 없이 사법시험 제도를 유지하더라도 매년 변호사를 1만명씩 배출한다면 소비자들은 왕 대접을 받게 될 것이다.

변호사들이 어떻게 실력을 쌓아서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것인지는 자신들이 알아서 판단할 문제다.

미국 역사상 가장 존경받는 대통령 링컨.젊은 시절 그는 유명한 변호사였다.

흥미로운 것은 링컨이 로스쿨을 다니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는 독학으로 변호사가 되었다.

당시에 로스쿨은 변호사가 되는 여러 가지의 방법 중 하나에 불과했다.

로스쿨을 다녀야만 시험 자격이 주어지는 지금의 제도는 1920년대에 미국 변호사들과 대학들이 서로 짜고 만들어 놓은 것이다.

명분은 무자격자를 걸러낸다는 것이지만 실은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였다.

그 뒤로 미국 변호사의 실력이 더 나아졌다는 증거는 없다.

미국 변호사들을 실력 있게 만드는 것은 그들간의 치열한 경쟁이지,로스쿨 제도가 아니다.

로스쿨을 갈 필요가 없었던 때도 미국 변호사들은 실력 있었다.

이건 우리에게도 다를 것이 없다.

로스쿨만 만들고,변호사의 숫자는 지금처럼 매년 1000명 수준으로 묶어 둔다면 변호사 되는 비용만 늘리게 된다.

기왕에 만들어지는 로스쿨이니,학생수를 최대한 늘려서 많은 변호사들이 쏟아져 나오게 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도 수임료 10만원만 내고도 변호사로부터 친절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