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국민은행에선 이변이 일어났다.

이날 선보인 '와인정기예금'이 하루새 892억원어치가 팔려 나간 것이다.

고금리를 내걸고 반짝 세일을 하는 특판예금을 제외하면 국민은행 역사상 최대 하루 판매액이다.

국민은행의 간판 히트상품인 '명품 여성통장'의 첫날 판매 기록(479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규모다.

시중 자금이 예금을 떠나 펀드로 몰리는 상황에 비춰볼 때 은행업계의 화제가 되기에 충분했다.

요즘 은행은 불황기다.

예대마진이 줄고 있는 데다 시중자금은 증시로 빠져나가고 있다.

지난 4월 이후 10조원 이상의 자금이 은행의 저원가성 예금인 요구불 예금에서 증권사 CMA(종합자산관리계좌)로 옮겨갔다.

은행들도 대응책 마련 차원에서 고객을 붙잡기 위한 맞춤형 상품을 잇따라 선보이고 있다.



◆불황속에 히트치는 상품들

신한은행이 지난 5월14일부터 판매한 여성 전용 수시 입출금식 예금인 '홈 앤 스위트 예금'은 한달 반 만에 8만6000계좌(1062억원)를 유치했다.

하루에 2000계좌 이상씩 팔려나간 셈이다.

고객이 상품이름과 회전주기 납입금액 납입주기 등 상품구조를 직접 설계할 수 있는 우리은행의 '마이 스타일 자유적금'과 고객의 취향에 따라 통장 이름을 자유롭게 지을 수 있는 기업은행의 '셀프네이밍 통장'도 각각 하루 평균 500계좌 이상씩 팔려나가며 히트상품으로 떠올랐다.


◆히트상품의 비결

은행들은 불황기를 맞아 금리를 높이는 등 가격 경쟁을 구사하기 쉽지만 요즘 소비자들은 금융상품을 선택하면서 효용이나 즐거움 같은 차별화된 가치를 더 많이 제공받기를 원한다는 게 전문가들 진단이다.

특히 모든 계층을 대상으로 일률적인 금리와 서비스를 제공하기보다는 특정 고객층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상품'들이 고객의 관심을 끄는 사례가 많다는 지적이다.

국민은행 '와인통장'의 경우 고령화 시대에 새로운 소비계층으로 떠오르고 있는 45~64세의 소위 '와인 세대'를 겨냥했다.

와인세대의 금융 수요와 건강에 대한 관심 등을 반영,금연 또는 규칙적인 운동을 다짐하면 우대금리를 주고 365일 건강상담이 가능한 헬스케어서비스 등 중·장년층 고객들의 이용도가 높은 부가서비스를 결합시킨 게 인기 비결이다.

국민은행의 '명품여성통장'과 신한은행의 '홈 앤 스위트' 예금'은 사실상 가계경제의 주도권을 쥐고 있지만 차별화된 서비스를 받지 못하던 여성의 금융 욕구를 파고들어 성공했다.

명품여성통장의 경우 주부들은 주로 다른 주부들과 수다를 떨면서 금융 정보를 교환한다는 데 착안,고객이 다른 고객을 데려올 때 추가 금리를 주는 '추천금리제도'로 여성고객을 유혹했다.

홈 앤 스위트 예금은 통장 표지에 벽지 문양을 넣는 등 여성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우리은행의 '마이 스타일 자유적금'과 기업은행의 '셀프네이밍 통장'은 기성 금융상품을 고르던 시대에서 벗어나 개별 소비자가 입맛에 맞춰 조건을 선택하려는 트렌드를 재빨리 읽고 상품에 반영한 게 성공 요인이다.

시중은행 상품개발실 담당자는 "고객들은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상품보다 '나를 위한 상품'이란 느낌을 가질 때 관심을 갖는 것 같다"며 "은행들도 갈수록 고객층을 세분화한 뒤 특정 계층을 겨냥한 맞춤형 상품을 개발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유병연 기자 yoob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