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액 기준 국내 1000대 기업들의 사내 유보율(留保率)이 지난해 말 현재 616%를 기록해 사상 처음 600%선을 넘어섰다고 한다.

대한상의 조사결과다.

유보율은 자본잉여금과 이익잉여금을 합친 금액을 자본금으로 나눈 비율로 이 수치가 높아졌다는 것은 기업들의 자금사정이 그만큼 나아지고 재무구조가 튼튼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익 증가보다는 투자 부진에 기인한 측면이 더 크다고 하니 우려되는 바도 적지가 않다.

실제 1000대 기업들의 유보율을 금액으로 환산할 경우 364조원에 이른다.

기업들의 곳간이 얼마나 풍성해졌는지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것으로 5년 전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어난 수준이다.

기업들의 부실한 재무구조 때문에 외환위기까지 겪었던 사실을 생각하면 금석지감(今昔之感)마저 든다.

하지만 최근의 기업 유보율 급증 현상은 결코 반길 일만은 아니다.

여유자금이 급증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신규 투자가 그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까닭이다.

특히 나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대기업들일수록 투자를 덜하고 번 돈을 쌓기만 하는 현상이 더 강하다고 하니 참으로 걱정이 크다.

신규 투자가 부진하면 기업의 미래 성장은 보장되지 않는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삼성전자 현대차 포스코 현대중공업 등 한국의 대표적 기업들을 글로벌 경쟁업체들과 비교한 결과 과거 큰 폭의 우위를 유지했던 연평균 매출성장률이 최근 들어 오히려 뒤지는 수준까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난 것도 바로 그런 점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기업들이 투자를 기피하는 데는 미래수익사업 발굴이 쉽지 않은데다, 경기회복에 대한 확신을 하기 어렵고, 거미줄처럼 얽힌 각종 규제가 투자를 가로막고 있는 점 등 복합적인 이유가 얽혀 있다.

자본시장 개방 확대와 함께 외국계 자본에 의한 적대적 인수·합병(M&A) 우려가 높아진 데 따른 대비를 하기 위해 재원을 비축하는 측면도 없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미래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나라 경제 회복세를 보다 확실히 하기 위해선 투자를 되살리는 것만큼 시급한 게 없다.

따라서 정부는 가능한 것부터 서둘러 투자환경을 개선해 나가야 한다.

불요불급한 규제를 과감히 철폐(撤廢)하는 것은 물론 고질적 반기업정서와 투쟁적 노동문화를 개선하는데도 힘을 쏟아야 한다.

기업들이 자사주 매입 등에 쏟아붓는 자금을 투자로 돌릴 수 있도록 경영권 방어장치를 강화하는 방안도 적극 강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