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MS)의 유일한 문제는 그들에겐 미학이 없다는 것입니다.

[글로벌 이슈 분석] '애플 세상' 꿈꾸는 스티브 잡스
전혀 없지요.

그들은 독창적인 아이디어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제품에 문화를 불어넣지 않습니다.

그것 때문에 슬퍼지는 것입니다."(와이어드와의 인터뷰에서)

MS를 이렇게 혹평할 수 있는 인물이 있을까. '세상에서 가장 창의적인 경영자,경제에 디자인의 개념을 도입한 인물,디지털 혁명가,몽상가,괴짜…'라는 온갖 수식어가 이름 앞에 붙는 경우는 그밖에 없을 것이다.

애플의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 그가 이번에 'MP3플레이어+휴대폰+인터넷'의 기능을 지닌 '아이폰(iPhone)'을 들고 나와 또 다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애플을 세웠다가 쫓겨난 뒤 다시 들어와 부활시킨 그다.

그는 제품의 디자인,특히 '미니멀리즘(minimalism)'을 강조한다.

'최소한의,극미의' 미학을 뜻하는 미니멀리즘.지금까지 일관된 애플의 단순하고 세련된 제품은 이 같은 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글로벌 이슈 분석] '애플 세상' 꿈꾸는 스티브 잡스
잡스는 애플을 부활시킨 MP3플레이어 '아이팟'을 설계할 때도 경쟁사들과 달리 가능한 한 단순하고 직관적인 디자인을 구현했다.

복잡한 버튼을 줄이고 간편한 '스크롤 휠'(손으로 돌리는 방식의 조작 기구)을 MP3플레이어에 처음으로 도입했다.

사용자들은 열광했고,무려 1억대가 넘게 팔려나갔다.

잡스가 디자인을 중요시한다고 해서 기능을 무시한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잡스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이들은 디자인이 순전히 어떻게 보이는가에 관련돼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하면 디자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의 문제다.

어떤 제품의 디자인을 잘 하기 위해선 그 제품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잡스는 사용자들이 얼마나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느냐도 철저히 계산하고 있었다.

잡스 이름 앞엔 늘 '혁신'이 붙어다닌다.

애플이 매킨토시 컴퓨터를 처음 출시했을 때 슈퍼볼 중계방송 도중 내보낸 광고가 바로 그랬다.

이 광고에는 창백하고 무표정한 군중 사이로 갑자기 한 여자 선수가 등장,큰 쇠망치를 들고 돌진하며 대형 화면을 깨부수는 장면이 나온다.

그리고 "1984년 1월,애플의 매킨토시가 나온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에서 영감을 얻은 이 광고에서 '빅브러더'(대형 화면)를 부수는 장면은 물론 당시 최대 컴퓨터 기업인 'IBM'을 타도한다는 메시지였다.

이 광고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고,애플의 숭배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잡스는 독특한 철학만큼이나 인생 역정도 남다르다.

1955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미혼모의 아이로 태어난 그는 친모의 얼굴도 모른 채 한 부부에게 입양된다.

어린 시절 잡스는 호기심으로 똘똘 뭉친 아이였다.

전기 소켓에 머리핀을 집어넣어 화상을 입은 것은 그나마 사소한 일.그는 특히 전자 장치에 관심이 많았다.

그런 관심이 최고조에 달했던 1976년 21세의 나이에 친구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차고를 사무실로 개조,지금의 애플을 설립하게 된다.

이어 1977년에는 세계 최초의 개인용컴퓨터(PC)인 '애플Ⅱ'를 세상에 내놓는다.

당시는 IBM으로 대표되는 대형 컴퓨터만 있던 시절.사람들은 그 작은 컴퓨터를 보고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잡스는 성공 가도를 탔고 회사 설립 4년 만에 억만장자의 반열에 오른다.

하지만 그에게도 위기가 닥치기 시작한다.

잡스의 독선적인 경영 방식에 불만을 품은 이사회가 1983년부터 그에게 경영권을 주지 않으려 한 것.잡스는 차선책으로 경영의 귀재인 존 스컬리 펩시 사장을 영입한다.

당시 잡스가 스컬리에게 "정말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데 설탕물이나 팔며 남은 인생을 허비할 것이냐"고 한 말은 미국 비즈니스 역사에 전설이 된 에피소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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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2년 후 잡스는 스컬리에 의해 애플에서 쫓겨나고 만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바로 넥스트(NeXT)란 회사를 창업,컴퓨터를 만들기 시작한다.

잡스는 먼저 '넥스트스텝'이란 독특한 운영체제(OS)에 플로피디스크가 아닌 광자기드라이브(MOD)를 장착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MOD가 탑재된 PC는 언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엄청나게 비싼 가격 때문에 제대로 팔리지 않았다.

그는 이번엔 콘텐츠에 주목하기 시작한다.

영화와 컴퓨터를 동시에 활용한 3차원(3D) 애니메이션이 그를 매혹시켰던 것.잡스는 영화 '스타워즈' 감독으로 유명한 조지 루카스로부터 애니메이션 회사 픽사(Pixar)를 사들인다.

그리고 픽사의 첫 작품인 3차원 애니메이션 영화 '토이스토리'(1995)가 3억5000만달러 이상을 벌이들이는 대박을 터트리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반면 잡스가 떠난 애플은 경영난이 심화돼 갔다.

혁신적 아이디어보다는 경영과 관리에 치중한 탓에 애플 특유의 경쟁력이 사라졌다.

결국 애플은 1997년 넥스트를 인수하면서 잡스를 다시 불러들였고,잡스는 애플의 'iCEO'가 됐다.

'임시(interim) CEO'란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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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곧바로 1998년 애플을 흑자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한다.

모니터와 본체를 하나로 만든 혁신적 디자인의 아이맥(iMac)을 만들어 시장의 뜨거운 관심도 받았다.

잡스는 2000년에 정식 CEO가 됐지만 여전히 스스로를 iCEO라고 불렀다.

이제는 '인터넷(internet) CEO'란 의미였다.

잡스는 때로 지나칠 정도의 카리스마와 자존심 때문에 문제를 겪곤 했다.

회의 때면 화이트보드를 독점하며 제품 이름에서 포장박스까지 자기가 모든 일을 결정했다.

그는 지나친 기술 우월주의에 빠져 있다는 비판도 받았다.

1984년 그가 개발한 운영체제 매킨토시는 그래픽 기반에 마우스 기술이 접목된 혁명적 상품이었다.

하지만 잡스는 이를 애플 컴퓨터에만 쓰도록 고집했고,결국 마케팅으로 무장한 IBM에 뒤처지는 결과를 낳았다.

이때의 결정은 애플 역사상 최악의 사건으로 기록되고 말았다.

잡스는 이제 아이폰으로 새로운 신화에 도전한다. 그는 췌장암으로 '6개월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적이 있다.

극적으로 회복한 후 2005년 스탠퍼드대학 졸업 축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매일매일을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살아가십시오.항상 갈망하고 언제나 우직하게…." "Stay hungry,stay foolish!"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