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물건을 팔아 버는 것보다

물건을 산 고객이 더 많이 벌었다고 느끼게 해줘야 한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머리 속은 온통 '고객'이라는 단어로 가득 차 있다.

연구개발(R&D)도 고객,생산도 고객,마케팅도 고객,공급망관리(SCM)도 고객,모든 경영 활동의 중심에는 고객이 있다.

구 회장뿐 아니다.

아버지인 구자경 명예회장도 그랬고,할아버지인 구인회 LG 창업자도 마찬가지였다.

고객 없이는 LG그룹 경영자들의 'DNA'를 설명할 순 없다.

LG그룹이 창업 초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고객을 기업 활동의 최우선 순위에 두어 온 이유는 자명하다.

"고객이 바로 기업의 존재 이유"라는 생각 때문이다.

어쩌면 당연한 말처럼 들리지만 물건을 사주는 고객이 없다면 기업도 없다는 것.따라서 '우리(LG)가 물건을 팔아 버는 것보다,물건을 산 고객이 더 많이 벌었다고 느끼게 해줘야 한다'는 게 LG그룹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고객 가치 경영'의 기본 철학인 셈이다.

웹2.0시대의 특징인 '소통과 공유'를 한시대 앞서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LG그룹의 고객 경영은 6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LG는 국내 최초의 화장품,치약,플라스틱에서 라디오,전화기,TV,세탁기까지….누구도 시도하지 않았지만 당시 국민들에게 꼭 필요했던 제품을 국산화함으로써 생활수준을 높였다.

적절한 시기에 필요한 걸 공급했지만 고객의 선택이 없었다면 일장춘몽에 그쳤을 터다.

이러한 고객경영이 체계화된 것은 1980년대 말.본격적인 글로벌 경쟁 시대에 대응하기 위해 대대적인 경영혁신을 추진하면서다.

종전의 창업이념이던 '개척정신'과 '연구개발'을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로 '업그레이드' 시켰다.

1992년에는 매년 4월을 '고객의 달'로 제정,선포하고 '고객의 자리''고객의 결재난'과 같은 제도를 시행해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IMF 외환위기는 고객 가치 경영에도 큰 위기로 작용했다.

'일단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 아래 사업 구조조정과 체질 개선이 모든 경영 활동의 우선순위로 자리잡았었기 때문이다.

현 구본무 회장이 다시 고객경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피력하기 시작한 건 2005년.구 회장이 느끼는 고객경영의 필요성은 10년 전과는 그 절실함의 정도에서 차원이 다르다.

10년 전보다 글로벌 경쟁은 훨씬 더 치열해졌고,대부분의 제품이 공급과잉 상태에 접어들면서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게 됐다.

구 회장은 2005년 신년사에서 "고객의 입장에서 고객이 원하는 것을 미리 파악해 경쟁사와는 다른 차별화된 방식으로 고객에게 더 큰 만족을 안겨줘야 한다"며 "품질,디자인,서비스 등 모든 면에서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해 고객이 인정하는 진정한 일등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후에도 그룹 차원의 행사 때마다 고객 경영을 빼놓지 않고 강조해왔다.

고객 경영에 대한 그의 의지는 올 들어 주력 계열사들의 실적 개선으로 이어지고 있다.

LG전자는 지난 1분기 흑자전환에 이어 2분기 어닝서프라이즈 수준의 실적을 달성했으며,LG필립스LCD도 2분기 1년 만에 흑자전환을 이뤘다.

LG데이콤과 LG생활건강은 올 1분기에 분기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하기도 했다.

모든 계열사가 고객경영을 꾸준히 실천한 덕분이다.

이 같은 주요 계열사들의 실적 개선에 시장도 화답하고 있다.

LG의 12개 상장사 시가총액은 지난 5일 현재 54조5600억원으로 연초 36조6000억에 비교해 50% 가까이 늘었다.

종합주가지수 상승률 28%보다 두 배 가까운 상승세다.

하지만 구 회장은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2분기의 실적 호조가 예상되던 지난 3일 임원세미나에서 그는 "단기 실적은 중요치 않다,근본적인 경쟁력 없는 성장은 사상누각(沙上樓閣)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매출,영업이익 등 단기적인 실적에 치중한 나머지 경쟁력의 근간이 되는 고객경영 활동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는 뜻이었다.

구 회장은 올초 신년사에서 "올해는 고객가치 창출 성과를 철저히 점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한 달에 3∼4회에 걸쳐 LG전자,LG필립스LCD,LG화학,LG생명과학,LG텔레콤,LG데이콤 등 주요 계열사 CEO 및 사업본부장들과 개별적으로 만나는 릴레이 대화에도 나서고 있다.

그룹 관계자가 "LG그룹의 고객가치경영은 현재 진행형"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유창재 기자 yooco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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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무 회장이 2007년 고객경영 어록

"고객가치를 선도하는 일등경영을 통해 미래의 변화를 주도해 나가야"

- 1월 새해 인사모임

"당장은 힘들고 어렵더라도 경영의 패러다임을 보다 철저하게 고객가치 중심으로 바꿔 나가야"

- 1월 글로벌 CEO전략회의

"R&D는 새로운 기술,그 자체가 아니라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생각의 지평을 확대해야"

- 3월 연구개발성과보고회

"도요타의 시스템과 제도뿐 아니라 철저한 '고객중시'의 조직철학과 올바른 가치체계를 조직 내에 확고히 뿌리내리는 법을 배워야"

- 4월 일본 도요타자동차 방문

"고객의 잠재된 니즈를 발굴해 고객의 생각보다 한발 앞서 라이프스타일을 선도하는 독창적인 디자인을 창출해야"

- 5월 LG전자 디자인경영센타 방문

"각사의 모든 경영활동을 고객에게 최고의 가치를 제공하기 위한 'LG만의 방법'을 찾는 데 집중해야"

- 5월 스킬올림픽

"폴란드 클러스터가 현지 고객들에게 최고의 가치를 제공해 유럽시장 점유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해야"

- 5월 폴란드 LCD클러스터 방문

"근본적인 경쟁력 향상과 고객만족이 뒷받침되지 않는 성장은 사상누각에 불과,지속가능한 성장과 함께 진정으로 고객이 인정하는 일등기업을 만들어야"

- 7월 임원세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