柳相浩 < 한국투자증권 사장 jamesryu@truefriend.com >

최근 한 인터뷰에서 어느 기자가 취미를 물어 왔을 때 마땅히 내세울 만한 게 없다는 걸 새삼 느꼈다.

대부분의 CEO들처럼 주말마다 치는 골프는 취미라기보다는 일과 같은 것이 되었고,여행을 하기에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다.

습관이 되다시피 한 독서는 취미라기보다는 학습의 한 형태였다.

바쁜 시간에 취미생활을 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필자가 가장 오랫동안 즐겨온 취미는 '요리'였다. 20여년 전 아내와 함께한 미국 유학 시절부터 요리를 시작했으니 그 역사가 꽤 깊다. 재미도 있었고,한식 중식 양식 등 장르도 다양했다. 그러다 아내가 딸을 출산했을 때 내 요리가 빛을 발하지 않았나 싶다. 미국 병원의 산모 음식이란 게 샌드위치와 수프에 불과한데,필자는 미역국과 흰 쌀밥을 해 날랐으니….아내는 아마 지금도 그 맛을 잊지 못하리라 기대한다.

이후 영국 런던에서 7년 남짓 생활할 무렵 주말이면 장을 보고 요리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일요일 아침,요리를 정성껏 준비한 후 아내와 딸을 깨워 함께 식사하는 행복은 평소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주고,긴 외국생활의 외로움을 덜어주는 활력소였다.

그러나 한국으로 돌아온 후 지난 8년간 필자는 요리다운 요리를 해본 적이 거의 없다. 그 말은 곧 취미다운 취미생활을 해본 적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잡지에 필자의 취미가 요리라고 소개된 기사를 본 딸아이가 "아빠,1년에 한두 번 어쩌다 하는 건 취미가 아니에요"라고 지적하는 것도 당연했다.

2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취미생활을 지금은 제대로 즐기지 못하고 있으니 그것이 비단 필자뿐이고 CEO들뿐이랴. 분주하게 살아가는 이 땅의 많은 직장인들이 시간을 활용,가족과 함께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는 것 또한 능력 중 하나가 아닌가 싶다.

그런 면에서 필자는 부족함이 많다.

필자는 요리를 가장 창조적인 예술행위라고 생각한다. 같은 재료로 같은 시간에 요리를 해도 맛과 모양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여 은퇴 후에는 정식으로 요리를 배워볼 생각이다. 또 각국의 정통요리 식당을 찾아 다니며 그 맛과 노하우를 정리,'식도락과 함께하는 해외여행'이란 책도 써볼 생각이다.

그러려면 지금부터라도 시간 부족을 탓하지 말고 부지런히 취미생활에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 직접 요리한 음식을 가족이나 이웃들과 나눌 수 있는 것보다 더 행복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번 주말엔 어머님 병수발로 고생하는 아내와 방학으로 귀국한 딸을 위해 내 대표 요리인 전복삼계탕 솜씨를 보여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