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대우그룹 계열사인 D사의 매각작업이 무르익던 2004년 말. 당시 모건스탠리 한국지점은 1조원 이상에 달하는 D사의 매각건을 따내기 위해 긴박하게 움직였다.

한국지점에 있던 M&A(인수합병)팀 외에 홍콩에서 10여명이 급파돼 공동작업을 벌였다.

이들은 대부분 M&A 경력 10년 이상인 베테랑급들로 관련 분야 최고 전문가들이었다.

며칠밤을 새가며 일사천리로 M&A 전략을 완성한 후 D사에 제안서를 제출했고,결국 주간업무를 따냈다. 모건스탠리 한국지점이 이 거래로 받은 수입은 400억원에 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요즘처럼 활황장에서 국내 대형 증권사가 한 달 동안 벌어들인 돈보다도 많은 금액이다.

당시 M&A 딜에 간접적으로 관여했던 국내 한 증권사 IB담당 임원은 "국내 증권사 임원의 몇년 연봉과 맞먹는 돈을 단 한 번에 인센티브로 받아갔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국내 증권사의 빈약한 인력관리

미국 MBA(경영학석사) 졸업생 가운데 가장 인기있는 직장은 바로 골드만삭스와 같은 대형 IB(투자은행)다. 금융 인재가 IB로 몰리는 이유는 무엇보다 돈을 많이 주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의 경우 정규 연봉 외에 파격적인 인센티브 제도를 갖추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지난해 주식인센티브플랜(SIP)에 따라 모두 36억6900만달러어치(약 3조4000억원)의 주식을 개인별 성과에 따라 직원들한테 나눠줬다. 1인당 평균 1억3000만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인력 관리 시스템도 국내 증권사와 비할 바가 아니다. 외국계 증권사 관계자는 "MBA 졸업생을 뽑으면 단계별로 치밀하게 경력관리를 해 해당 분야 최고 전문가로 클 수 있도록 해준다"고 밝혔다. 가령 외국계 IB의 경우 처음 입사하면 애널리스트로 최소 7년을 근무하게 한 후 실력이 보이면 어소시에이츠로 승진시켜 실제 프로젝트에 참여시킨다.

여기서 성과를 나타내면 매니저→바이스 프레지던트→매니징 디렉터 등의 단계로 승진시켜 프로젝트를 총괄하게 한다. 보통 하나의 프로젝트는 글로벌 단위로 진행되기 때문에 프로젝트를 성사시키면 엄청난 성과 보수가 뒤따른다.

이에 비해 국내 증권사들은 보수체계가 열악하기 짝이 없다. 한 증권사 IB본부 직원은 "IB팀 소속이 부러움의 대상이지만 정작 제대로 인센티브 제도를 갖춘 증권사는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인력 관리도 주먹구구식이다. 신입사원 때부터 체계적으로 경력을 관리해주는 프로그램은 찾아볼 수 없다.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도 전무

재정경제부는 지난해 6월 자본시장통합법을 마련하면서 '금융전문인력 양성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이 계획안은 우리나라가 아시아 금융허브로 재도약하기 위해 향후 필요한 금융 전문가 육성 방안과 일정을 담은 일종의 로드맵이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제대로 진행돼있는 것은 없다. 금융인력 양성을 전담할 '금융인력네트워크센터'를 설립하긴 했지만 이렇다할 성과가 없다.

심지어 작년 말까지 만들기로 했던 '금융인력 수급전망 보고서'조차 아직 내놓지 않고 있다. 정부가 설립을 주도한 금융전문대학원도 겉돌고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금융전문대학원의 경우 그나마 제대로 된 커리큘럼을 갖추고 있지만 내년 초 배출해 낼 첫 졸업생이 고작 100명도 안된다.

이에 반해 금융 선진국인 싱가포르의 경우 이미 오래 전부터 화교경제권에 금융전문가를 독점 공급하기 위한 '금융허브 전략'을 짜놓고 우수한 인재에 대해선 정부가 특별관리하고 있다. 1974년 정부 지원으로 설립된 싱가포르금융연구원(IBF)의 경우 무려 4000개 교육과정을 갖고 있으며 그동안 배출해낸 전문인력이 18만여명에 달한다.

전문가 양성 프로그램이 없기는 민간 쪽도 마찬가지다. 각 대학들의 경우 MBA 과정을 경쟁적으로 만들고 있으나 전공 분야가 대부분 마케팅이나 경영전략에 치우쳐 있어 금융분야의 특화된 인력 배출에는 한계가 있다. 일부 대형 증권사들의 경우 사내 연수과정을 마련하고 있으나 아직도 도제식에 가까운 것이 현실이다.

정종태 기자 jtch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