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을 앞두면 수년 전부터 맥이 빠진다. 남들이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준비'를 하는 것이다. 새로운 일을 벌이지 않고 공부도 하지 않으며 심지어 보고서를 포함해 글쓰기를 멈추는 사람도 많다. 자신의 쓸모를 스스로 없애간다. "나는 열심히 일했다. 그러니 이제 쉬어야 한다"며 자기최면을 거는 것이다. 그러다 퇴직을 하게 되면 정말로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퇴직과 동시에 눈에 띄게 늙어버리는 사람이 많은 데는 이런 곡절이 있다.

퇴직이나 실직이나 말은 좀 다르지만 일자리를 잃는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정년이라는 넘을 수 없는 벽 때문에 여전히 능력이 있는 사람들도 자신을 이렇게 무능한 존재로 만드는 일이 벌어진다. 몸도 마음도 젊지만 사회가 이제 그만 일하라니 따를 수밖에.

'한국 직업 발달사'를 쓴 김병숙 교수(경기대)는 현재의 정년제도야말로 일제의 잔재라고 주장한다. 신체적, 정신적 능력이 고갈돼 일을 그만두는 나이인 정년은 우리가 대체로 55세 정도로 알았고 요즘은 40대 중반에 정년을 맞아도 할 수 없는 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우리의 전통적인 관행으로 보면 정년은 사실상 없었다. 실제 '고려사'에 따르면 고려 시대에 정년은 70세였고 직무능력이 있으면 90세에 임용되기도 했다. 조선의 경우도 '경국대전'에 의하면 행정가의 정년이 70세였다. 육체적 근로자는 66세로, 장인들은 60세로 정해져 있었고 모든 경우에 능력이 있으면 재임용됐다고 한다. 고려나 조선이나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겨우 40세를 넘던 시절이었다.

김 교수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현대에 비해 손색 없는 실업대책을 갖고 있을 정도로 독특한 노동시장을 발달시켜왔지만 일제가 우리나라의 독자적 노동시장 성장을 방해했다"고 설명했다. 50대 정년이란 것도 그때 생긴 관행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정년퇴직을 앞두고 스스로의 자존감과 효용성을 부정하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일이다. 피터 드러커가 말하는 '중년의 위기(mid-life crisis)'가 바로 이런 것이다. 이 위기를 벗어나려면 '은퇴란 없다'는 각오를 다져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욕심이 아니라 예전부터 내려오는 전통이란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개인들만을 위한 얘기가 아니다. 엊그제 나온 통계대로 2050년이면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늙은 나라가 된다. 65세 이상의 인구비중이 38.2%나 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 노령인구가 각각 홀로 서지 않으면 나라전체가 후진국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 계속 일하는 것이 애국하는 길인 것이다. 해외로 나가도 좋고,봉사를 해도 좋고,후학을 가르쳐도 좋고,실버 창업을 해도 좋다. 최소한 인터넷을 쓸 줄 알고 휴대폰 문자를 전송할 수 있어야 하고 디지털 카메라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 다행히 지식의 시대고, 창조의 시대고, 상상력의 시대다. 일을 위한 최소한의 체력만 있어도 100세까지 일할 수 있는 좋은 시절이라는 얘기다.

인구구조의 변화는 느리지만 가장 확실한 방향을 갖는 미래지표다. 지금처럼 정년을 인정하고 은퇴하는 풍토면 불행한 미래가 오게 돼 있다. 정부는 물론 대선주자도 여기에 대해선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다. 후반부 인생의 승부를 결정짓는 중장년의 자기경영이 절실한 때다.

권영설 한경 가치혁신연구소장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