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후 4시30분 서울 흥인동 서울지방노동청 8층 청장실에 이랜드그룹 노사 양측이 머리를 맞대고 앉았다.

전날 밤부터 노동부가 민주노총과 이랜드 사태에 적극 개입,중재에 나선 데 따른 것이다.

노동부는 이에 앞서 같은 날 오후 2시 '대표이사가 성실히 교섭에 임하고 11일부터 한 달간 노사 협상 기간을 평화 기간으로 정해 뉴코아 해고 근로자 53명을 협상 기간 중 한시적으로 복직시키며 이 기간에 지명 수배된 6명의 노조원에 대해 신변을 보호한다'는 내용의 4대 중재안을 발표했다.

노동부의 중재안 덕분에 파국으로 치닫는 이랜드 사태는 극적인 돌파구를 찾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노사 협상은 시작부터 순탄치 않았다.

오후 4시로 예정된 협상은 30분이 지나서 시작됐다.

10분이면 노동부 중재안에 대해 서명하고 악수하는 장면이 연출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협상은 두 번의 정회를 거치는 등 세 시간을 끌었다.

정회 때 잠시 만난 노조 관계자는 "중재안이라니요,정부에서 실수한 것 같다"고 말해 취재 기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노동부의 중재안을 처음 들어 본다는 얘기다.

협상을 두 번씩 정회한 것도 노조가 상급 단체인 민주노총에 중재안 내용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란 설명이었다.

오후 8시10분이 지나자 노조 관계자들이 먼저 문을 박차고 나오면서 "타결되지 않았다.

합의된 게 없다"는 말을 쏟아냈다.

이 협상은 처음부터 깨질 수밖에 없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노동부는 중재안을 마련하면서 장관의 활약에만 신경 썼지,정작 이해 당사자인 노사 양측으로부터 사전에 확답을 받는 과정을 소홀히한 것이다.

첫 단추가 어긋나면서 노사 양측에 불신의 골이 깊게 팬 꼴이 됐다.

이랜드 사태는 비정규직 보호법이 안고 있는 문제를 총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때문에 노동부의 중재안과 향후 대책에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노동부는 사전에 중재안에 대한 노조 측의 이해를 구하지 못한 미숙한 대응으로 이랜드 사태를 더욱 꼬이게 만들었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노조 측이 11일 홈에버 시흥점 점거를 시도하고,불법 점거 농성 해소를 위한 공권력 투입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이랜드 사태는 파국을 향해 치닫고 있다.

김진수 생활경제부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