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그동안 금기시해온 기업 인수·합병(M&A)에 나선다.

이는 최근의 성장 정체를 타개하고 신수종 사업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풀이되고 있다.

일단 주력사인 전자가 앞장서고 다른 제조계열사들이 합류할 것으로 보인다.

재계는 삼성이 M&A 시장에 참여할 경우 상당한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11일 삼성 고위 관계자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기존 'M&A 불가' 방침을 수정,선별적 M&A에 나서기로 하고 첫 프로젝트로 삼성전자의 해외 정보기술(IT) 기업 인수를 검토 중이다.

이 관계자는 "그동안 투자 확대 등을 통해 기존 사업을 확장하는 데 주력해 왔지만 앞으로는 성장동력 확충을 위해 M&A를 적극 활용할 계획"이라며 "(M&A가)필요한 회사가 있고 필요한 상황이라면 M&A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이미 그룹의 주력사인 삼성전자가 해외 IT 기업 한 곳을 인수하는 방안을 짜고 있으며 다른 계열사들도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측은 인수 대상에 오른 기업이 규모는 크지 않지만 IT 분야에 상당한 기술력과 지식자산을 보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가 M&A를 추진하는 것은 1995년 미국 컴퓨터 업체인 AST사를 인수한 이후 12년 만의 일이다.

재계 관계자는 "그동안 '삼성공화국 논란' 등의 여파로 인위적인 외형 확대를 주저해오던 삼성이 M&A를 통한 성장전략을 본격화하는 신호탄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M&A에 나서면서 지금까지 암묵적으로 M&A 전략을 수용하지 않았던 삼성그룹의 경영 방침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생길 것으로 보인다.

삼성은 △1995년 미국 AST사 인수가 결과적으로 실패했고 △상당한 자금력과 위험 부담을 감수해야 하며 △삼성의 성장이 국내 일각에서 '삼성공화국'이라는 이름의 비판론으로 돌아오는 등의 현실을 감안해 계열사 단위에서 M&A 필요성을 제기하더라도 그룹 차원에서 이를 막아왔다.

삼성은 대신 반도체 휴대폰 디스플레이 조선 플랜트 등 핵심 사업에 대규모 R&D(연구개발) 투자를 통해 자체 성장동력을 창출하거나 다른 기업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분야에 진출하는 성장전략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연 150조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그룹의 규모에 걸맞은 신수종 사업을 찾기가 어려운 데다 해외 경쟁사들이 M&A 전략을 통한 덩치 불리기에 나서는 상황을 감안할 때 더 이상 M&A 전략을 외면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의 경우 매년 5조원 정도를 R&D에 투자하며 핵심 인재를 영입하고 있지만 2004년 이후 성장세가 둔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룹 전체적으로도 2004년 매출 135조원을 넘어선 이후 큰 폭의 증가세를 올리지 못하는 상태다.

반면 마이크로소프트(MS) 도시바 등 글로벌 시장의 경쟁자들은 M&A와 전략적 제휴 등을 통해 외연 확대에 적극 나서고 있다.

재계에서는 삼성전자 외에 삼성중공업과 삼성토탈 등도 주력 사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M&A 시장에 적극 뛰어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