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캐나다 접경지역에서는 교통사고가 매우 잦다고 한다.

캐나다 도로의 제한속도는 ㎞표시인데,마일(1마일=1.609㎞)을 쓰는 미국 도로를 달리던 운전자들이 캐나다로 넘어와서도 무심코 과속한다는 것이다.

서로 다른 도량형 단위로 빚어지는 문제를 지적할 때 흔히 인용되는 얘기다.

단위 혼용으로 인해 심각한 사고가 발생한 다른 사례도 많다.

정부가 예고한 대로 이달부터 법정단위가 아닌 척관법(尺貫法)을 사용하는 업소나 기업에 대한 단속에 들어갔다.

한두 번 어기는 것은 주의나 경고에 그치겠지만 세 번째는 50만원까지 과태료를 물려 이번에야말로 반드시 척관법을 뿌리뽑겠다는 의지다.

이에 따른 혼선도 만만치 않다.

그동안 익숙했던 32평 아파트,29인치 TV,금 한돈쭝 반지라는 표현을 갑자기 쓰지 말란다고 수십년의 관습이 하루 아침에 바뀔 리는 없다.

궁여지책으로 '32타입 아파트' '29형 TV'등 웃지못할 아이디어가 속출했지만,이것도 단속대상이 되자 어떤 건설업체는 아예 과태료를 물고라도 당분간 '평'을 쓰겠다고 나섰을 정도다.

정부가 척관법 추방을 시도했던 것은 한두 차례가 아니다. 1961년 미터법을 법정단위로 채택한 이후 기회있을 때마다 미터법 사용을 강제하려 했지만 그때마다 실패로 돌아갔다.

경제활동에서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의 통일에 해당하는 것이 표준이고,그 핵심은 '단위'이다.

미터법으로 통일하려는 정부 정책은 그래서 틀린 건 아니다.

척관법의 계량오차와 부정확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과 소비자 피해가 크다는 것 말고도 미터법을 써야 할 이유는 많다.

세계 대다수 국가의 공통단위라는 점,정확도가 높고 10진법으로 계산이 쉬우면서 명칭이 간단한 장점 등이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척관법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은 그 나름의 편리함 때문이다.

지금의 척관법은 일제(日帝)의 잔재라는 문제 제기도 없지 않지만 1평(3.3㎡)은 가로 세로가 1.8m로,어른 한사람이 팔다리를 뻗고 누울 수 있는 넓이다.

1자(30.3cm)는 손 한뼘 또는 손끝부터 팔꿈치까지의 길이에서,한 홉(180ml)은 어른이 한 번에 마시는 물의 양에서 유래한다.

'생활친화적'이고 합리성 또한 없지 않다는 얘기다.

적어도 1m를 '빛이 진공 중에서 2억9979만2458분의 1초 동안 진행한 거리'로 삼은 것보다는 그렇다.

정부는 척관법의 폐단을 강조하지만,지금은 평과 돈 정도가 제한된 범위에서 쓰일 뿐이다.

아파트를 평수로 말하고,금을 돈으로 거래하는 것이 아직은 쉽고 편리한 까닭이다.

반면 요즘 쌀을 말·되로 사고 팔거나,키를 몇 자 몇 치,몸무게를 몇 관 몇 근,거리를 몇 리라고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누가 쓰지 말라고 해서가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불편해져 사용가치를 잃은 것이다.

오랜 관습도 생활양식 변화와 정합(整合)되지 않으면 저절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

편리한 관습은 아무리 법으로 밀어붙여도 뿌리뽑히지 않는다.

정부가 다른 급한 일들을 제쳐두고 수십년 묵은 계량법을 또다시 들고나와 국민들만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는 얘기다.

무엇보다 평이나 돈은 안 되고 3.3㎡,3.75g은 괜찮다는 식은 그야말로 '눈가리고 아웅'이나 다를 바 없다.

공연히 부산만 떨고 건지는 게 없는 헛다리 짚기로 끝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추창근 논설위원 kunn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