퀀트(Quant)는 물리학의 영감과 수학적 지식,컴퓨터 프로그래밍 기법을 망라하여 금융 증권 가치를 평가하는 정량금융분석가들을 일컫는 속어다.

신간 '퀀트'(이매뉴얼 더만 지음,권루시안 옮김,승산)의 원제는 '퀀트로 살아온 내 생애(My life as a quant)'. 이 책에는 물리학을 종교적 차원으로 신봉하던 한 과학자의 희망과 좌절,불혹의 나이에 투자은행으로 이직하여 금융공학자로 성공하기까지의 인생역정이 파노라마처럼 전개된다.

저자는 채권옵션과 변동성 스마일을 조정한 옵션모형 등으로 금융산업과 학계에서 최정상으로 인정받는 금융공학자다.

2003년부터 컬럼비아대학에서 금융공학 프로그램 책임을 맡고 있다.

이 책은 그의 자서전이지만 가족관계보다 자신에게 영향을 준 주변 인물 및 직업과 관련된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들로 가득하다.

특히 자신의 능력과 성격상의 약점을 너무도 솔직하게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훨씬 더 많은 공감을 준다.

'물리학과 금융에 관한 회고'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전반부는 1966년 컬럼비아대 물리학과 박사과정에 진학하면서부터 1985년 벨연구소 근무를 마칠 때까지 물리학과 관련된 20년 동안의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제2의 아인슈타인,파인만을 꿈꾸던 남아프리카 공화국 출신의 더만이 장학생으로 진학한 컬럼비아는 당시 최고의 물리학 교수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저자는 천재이며 물리학과의 독재자로 유명하던 리정다오에 대한 공포수준의 경외심과 그로 인해 자신의 평범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번뇌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다.

1980년 AT&T의 벨연구소에서 업무분석 시스템엔지니어로 근무하게 됐을 때 소심하고 내성적이며 강박증이 있는 탓에 적응하기 어려웠던 얘기도 들어 있다.

후반부야말로 책의 주제인 퀀트로서의 삶에 대한 이야기인데,특히 파생상품을 공부한 학생들이나 금융분야 종사자들은 이름만 들어도 흥분을 감추지 못할 금융공학자들과의 에피소드가 풍성하게 담겨 있다.

금융 지식이 없던 더만은 1985년 월가의 최대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로 이직하게 되는데 나이가 이미 마흔이었다.

당시 금융시장에는 파생상품이 포함된 복잡한 금융상품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물리학과 수학적 지식을 갖추고 컴퓨터의 금융모형 프로그래밍을 할 수 있는 인력은 부족한 상태였다.

그 곳에서 더만은 전설적인 피셔 블랙을 만나게 된다.

블랙은 마이런 숄즈와 함께 1973년에 블랙-숄즈 옵션가격결정모형을 만든 인물.피셔 블랙,빌 토이와 함께 개발한 미국 재무성 채권옵션모형은 골드만삭스의 확정수입증권 거래에 빈번히 사용되었으며 더만은 차츰 업계에서 명성을 얻게 된다.

그러나 1988년 경쟁사인 잘로몬브라더스로 자리를 옮겼다가 1년 만에 해고되는 수모를 겪고 다시 골드만삭스로 돌아온다.

블랙의 격려에 심기를 가다듬은 더만은 이라즈 카니와 함께 내재변동성 스마일을 조정한 옵션모형으로 입지를 확고히 굳히고 확정수입증권,주식파생상품,리스크 관리부서를 거쳐 정량전략파트의 책임자까지 승진한다.

2000년에는 국제금융공학자협회로부터 학자가 아닌 사람으로서는 최초로 '올해의 금융공학자상'을 받으며 머튼,블랙,루빈스타인,로스,재로,콕스,헐 등 최고 금융공학자들의 그룹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물리학이나 금융 모두 일반 독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주제일 것 같지만 더만은 기초 지식이 없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운 내용과 평이한 문장으로 배려하고 있다.

특히 그의 멘토였던 피셔 블랙과의 대화나 비행기 옆자리에 우연히 앉은 로버트 머튼과의 민망했던 만남 등 재미있는 일화는 다른 책에서 얻을 수 없는 보너스다.

퀀트로 활동하는 사람들이나 향후 퀀트의 길을 걷고자 하는 사람들,순수과학에서 세속(?) 과학으로의 이주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필독서다.

472쪽,1만8000원. 지홍민 이화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