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炳椽 < 서울대 교수·경제학 >

러시아의 소치가 한국의 평창을 제치고 2014년 동계올림픽 개최 장소로 선정됐다는 소식은 러시아의 부상을 알리는 신호탄처럼 들린다.

사실 최근 러시아는 한국을 여러 면에서 제치고 있다.

2006년 러시아의 경제규모는 한국을 능가해 세계 10위권에 속하게 됐다.

외환보유액 규모도 올 6월 말 현재 4000억달러가량으로 중국 일본에 이어 세계 3위를 차지,5위인 한국을 앞섰다.

그리고 이미 몇 년 전부터 미국의 유수 대학원 경제학과에서 러시아 학생들의 입학 허가는 증가한 반면 한국인 학생들의 입학허가는 줄고 있는 실정이다.

풍부한 지하자원과 유가 상승이 러시아의 경제성장에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다.

원유와 가스 산업은 러시아 국내총생산의 20%가량이며 그 수출액은 러시아 총 수출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그러나 러시아의 회복을 지하자원과 유가의 덕으로만 돌리기는 어렵다.

최근 러시아의 경제성장은 원유나 가스 산업 부문의 성장보다는 제조업의 성장과 투자 증가에 힘입은 바 크다는 사실은 러시아의 성장기조가 견고함을 시사한다.

러시아가 가진 장점은 풍부한 지하자원에 그치지 않는다.

기초과학 수준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대학 졸업자 중 이공계 졸업자의 비중이 50%를 넘어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예술과 관련된 문화적 토양은 세계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수준이다.

그리고 유가 하락에 대비해 조성한 석유안정화 기금은 올 7월1일 현재 1200억달러에 달한다.

이 때문에 지하자원의 저주,즉 풍부한 지하자원이 성장을 방해한다는 가설이 러시아에도 해당될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전문가들은 회의를 표시하고 있다.

체제 이행(移行) 이외 다른 조건들이 동일하다고 가정한다면 러시아 경제는 어디까지 성장할 수 있을 것인가. 체제가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바뀌면 동일한 조건 하에서 약 30%의 생산성 향상이 기대된다.

사회주의 소련의 1인당 평균소득은 미국의 3분의 1에 달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즉 러시아의 체제가 자본주의로의 이행이 완료되면 1인당 미국 소득의 약 40%에 해당하는 소득,즉 2006년 명목달러 기준으로 약 1만8000달러가 정상적인 소득인 셈이다.

2006년 러시아의 1인당 국민소득이 6800달러에 머물고 있으므로 향후 러시아의 성장 여력은 대단히 높다고 판단할 수 있다.

한국은 러시아 경제의 잠재력과 성장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필요가 있다.

인구 1억4000만명인 러시아의 1인당 소득이 1만8000달러에 이르게 되면 이는 유럽연합 회원국 경제규모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시장이 형성됨을 뜻한다.

뿐만 아니라 구소련 공화국이었던 우크라이나,벨로루시와 중앙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을 합치면 상당한 크기의 경제권이 형성된다.

그리고 이 국가들은 우리 경제의 장기 안정적 성장에 필요한 원유 가스 광물 등 지하자원의 소중한 공급처가 될 수 있다.

한국인들이 러시아에 진출할 때 경험하는 가장 큰 문제는 러시아의 부패와 관료주의다.

어떤 이들은 러시아에서의 부패는 생활이요 관료주의는 일상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한국 정부나 기업이 러시아를 대할 때는 장기적인 시각으로 전문가를 양성하며 핵심 인물과 꾸준히 신뢰관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일본은 러시아 전문 외교관을 양성하기 위해 세계 유수 대학에서 러시아 관련 석사 학위를 마치게 한 후 다시 러시아에서 1년 이상 공부를 하게 한다.

그 이후에도 러시아 사람들 집에서 1년 동안 의무적으로 기거하게 함으로써 러시아를 밑바닥에서부터 이해할 수 있도록 훈련시킨다.

러시아는 위험 때문에 포기하기에는 너무나도 매력적인 시장이요 잠재력이 큰 경제다.

어쩌면 한국 정부와 기업으로 볼 때 러시아는 정치,경제적으로 피해갈 수 없는 중요한 나라임에 틀림없다.

투명한 나라에서는 비전문가들도 행동 요령을 쉽게 이해하고 사업할 수 있지만 투명하지 않은 나라에서는 전문가들의 지식과 축적된 인맥의 도움 없이는 실패 위험이 급증하게 된다.

정부와 기업은 러시아의 더 높은 부상(浮上)에 대한 대비를 지금부터라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