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맨해튼 월스트리트 남쪽에 있는 뉴욕증권거래소에서 아래로 100m가량 내려가면 브라운색 고층 건물이 나온다.

다름아닌 세계 최대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 본사다.

그러나 건물 어디에도 골드만삭스란 간판이 없다.

미국 국기 2개 아래 '브로드 스트리트(Broad Street) 85'라는 주소만 달랑 쓰여 있을 뿐이다.

은행 간판도 걸리지 않은 세계 최대 투자은행 건물.오늘의 골드만삭스를 있게 한 비결을 그대로 나타낸다.

고객 및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는 겸손함과 나보다 우리를 내세우는 끈끈한 기업문화,헌신적이면서도 창의적인 세계 최고의 인재들,그리고 이들을 하나로 묶어내 정도(正道)로 이끄는 우수한 경영진.


이것이 바로 자본시장 통합법으로 투자은행을 육성하려는 한국은 물론 대부분 국가 금융회사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된 골드만삭스의 성공 비결이다.

◆'나'보다 '우리'를 강조하는 기업문화

보통 투자은행 직원들은 '나'를 강조한다.

'성과가 곧 보수'인 만큼 지나칠 정도로 자신의 업무 기여도를 내세운다.

그러나 골드만삭스 직원들은 다르다.

'나'보다는 '우리'가 먼저다.

'내가 이런 거래를 했다'는 보고서를 제출했다가 혼쭐이 난 신입사원이 한둘이 아니다.

그보다는 팀워크를 강조한다.

자랑보다는 겸손이 미덕이다.

본사 건물에 아무 간판이 없는 것도 이런 이유다.

가장 비인간적인 '돈장사'를 다루면서도 인간적인 유대와 신뢰를 중시한다.

한마디로 동양적이다.

가장 서구적인 일을,세계에서 가장 잘하는 회사인 것을 감안하면 어쩌면 아이러니다.


그러다보니 한국에서도 폐기된 고전적 단어들이 이 회사엔 살아 있다.

인화단결 공동책임 무한성실 평생직장 등.부서의 책임자가 퇴근하지 않으면 아래 직원들은 집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분위기도 남아 있다.

1초에도 수백만달러가 오고가는 트레이딩룸에는 선배가 후배를 혼쭐내는 '야구방망이 군기'가 여전히 존재한다.

호출을 받으면 새벽에도 달려나오고 휴가 반납은 거의 일상화돼 있다.

그런데도 직원들은 이를 싫어하지 않는다.

천문학적인 보수(작년 1인당 평균 62만2000달러·약 5억7000만원)로 보상을 받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런 특유의 기업문화가 그들의 회사와 그들을 '세계 최고'로 만든 비결임을 잘 알기 때문이다.

◆헌신적이며 창의적인 최고의 인재들

골드만삭스는 미국 50대 경영대학원 졸업생들이 가장 들어가고 싶어하는 직장이다.

그만큼 인기가 좋다.

그러다보니 입사 과정이 까다롭기 그지없다.

대학이나 대학원(MBA)을 졸업한 신입사원이나 경력사원 할 것 없이 마찬가지다.

일단 지원서를 내면 줄잡아 20~30명과 인터뷰를 해야 한다.

경력사원의 경우 자기의 전공 분야 상급자,그 위 상급자들을 차례로 만난다.

일할 지역의 책임자들과도 인터뷰한다.

본사의 담당 임원까지 거친다.

이 과정에서 그의 능력과 자질,회사가 원하는 인재인지 여부가 가려진다.

인터뷰한 상급자 중 한 명이라도 부정적인 의견을 낼 경우 채용이 재고된다.

신입사원의 경우 3~4단계의 면접을 거치면서 역시 20~30명가량과 개인 인터뷰가 진행된다.

처음부터 될성부른 사람만 뽑는 셈이다.

이렇게 뽑은 인재는 헌신적이며 창의성 있는 전문가로 양성된다.

신입사원 교육 때의 일화다.

8명으로 구성된 팀별로 과제가 주어졌다.

며칠 밤을 새워 가며 발표 내용을 준비했다.

그러나 웬걸,발표 30분 전에 과제가 바뀌었다.

"고객의 요구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만큼 고객이 원하는 모든 것에 대답할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었다.

말하자면 창의성과 순발력을 중시하는 셈이다.

'세계 최초'란 수식어가 달린 신상품과 금융기법을 개발할 수 있는 비결도 이런 교육 과정 덕분이다.


◆정도를 잃지 않는 경영진과 끈끈한 파트너들

골드만삭스는 1869년 독일 출신 유태인 마르쿠스 골드만과 사위 샘 삭스가 맨해튼에 차린 허름한 어음할인 가게에서 출발했다.

이들은 1999년 기업공개 때까지 철저히 보수적 가족주의를 고수했다.

1970∼80년대 적대적 인수합병이 성행할 때 공격당하는 기업의 방어를 대행해주는 등의 고객 우선과 신의 원칙도 이 과정에서 형성됐다.

이런 가족적 끈끈함은 지금도 여전하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파트너'라는 제도다.

전 세계 직원 2만6000여명 중 300여명만이 파트너다.

이들은 말 그대로 회사의 주인이다.

기업공개를 하기 전만 해도 이들이 모이는 자리에서 모든 것이 결정됐다.

그러다보니 이들의 자세는 사뭇 헌신적이다.

자다가도 달려나오는 게 이들이다.

직원들을 독려해가며 헌신적으로 만드는 사람들도 이들이다.

그러나 이들만으로 오늘날의 골드만삭스가 만들어진 건 물론 아니다.

이들을 엮어내고 방향을 제시하는 뛰어난 경영진을 골드만삭스는 가졌다.

대표적인 인물이 현대 골드만삭스의 기틀을 닦은 시드니 와인버그.그는 대공황으로 회사가 흔들리던 1930년 경영권을 장악하면서 골드만삭스의 역사를 새로 쓰게 된다.

와인버그는 특히 골드만삭스에서 사환부터 시작해 30년간 일하며 최고경영자(CEO) 자리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로 '골드만삭스의 아버지'로 불린다.

골드만엔 우수한 경영진이 많다.

특이한 건 최근 수십 년간 리더십이 2명의 공동 체제로 형성됐다는 점.1976년엔 존 와인버그와 존 화이트헤드가 공동 대표로 선임돼 8년간 회사를 함께 이끌었다.

현 재무장관인 헨리 폴슨은 존 코자인 뉴저지 주지사와 공동 회장으로 보완적인 리더십을 발휘했다.

골드만삭스는 공동의 리더십을 유지함으로써 투자은행 지도부가 빠지기 쉬운 아집과 독선을 견제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는 물론 경영진의 뛰어난 혜안과 헌신적인 자세가 뒷받침되었지만 말이다.

◆막강한 네트워크의 힘

"골드만삭스에서 은퇴한 뒤 갈 곳은 워싱턴"이란 말이 있다.

그만큼 골드만삭스 출신 거물이 많다.

당장 폴슨 재무장관이 골드만삭스 출신이다.

작년까지 8년 동안 회장 겸 CEO를 지내다 부시 행정부의 구원투수로 발탁됐다.

미 역사상 최고의 명재상으로 꼽히는 클린턴 행정부 시절의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도 역시 골드만삭스 CEO 출신이다.

뿐만 아니다.

조슈아 볼턴 백악관 비서실장,로버트 졸릭 세계은행 총재,스티븐 프리드먼 국가경제자문위원회 의장 등이 골드만삭스에서 갈고닦은 사람들이다.

위기에 처한 뉴욕증권거래소를 구원하기 위해 CEO로 임명된 존 테인도 골드만삭스의 최고재무책임자(CFO)를 지냈다.

1998년 폴슨 재무장관과 공동 회장을 역임했던 존 코자인은 뉴저지 주지사로 변신했다.

골드만삭스 출신 인사들의 워싱턴 진출은 최근 일이 아니다.

시드니 와인버그는 2차대전 당시 백악관특별위원회에서 근무했다.

레이건 정부에서 국무차관을 지낸 존 화이트헤드와 재무차관을 역임한 토머스 힐리도 골드만삭스 출신이다.

포드 및 카터 행정부에서 국무차관을 지낸 로버트 호매츠는 골드만삭스 부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이처럼 골드만삭스 출신들이 정·재계의 요직에 두루 포진하고 있는 것은 골드만삭스의 성공 전략과 소속 인물의 능력에 대한 높은 신뢰 때문이다.

여기에 '한식구'라는 동질감을 강요하는 기업문화가 작용,끌어주고 밀어주는 인간관계도 한몫 하고 있다.

이런 엄청난 네크워크가 골드만삭스를 최고로 만든 요인임은 말할 것도 없다.

뉴욕=하영춘 특파원 ha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