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주민등록초본을 불법 발급받은 전직 경찰간부 권모씨(64)가 이 전 시장의 경선 라이벌인 박근혜 전 대표 측 홍모씨의 부탁을 받고 초본발급을 의뢰했다고 15일 검찰에서 진술해 파문이 일고 있다.

사실로 확인될 경우 박 전 대표 측이 도덕성에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는 '메가톤급' 사안이다.

그러나 홍씨는 "초본 발급을 부탁한 적 없고,권씨가 자발적으로 가져왔길래 받아 봤을 뿐"이라며 '배후조종설'을 전면 부인하고 나서 향후 치열한 진실공방이 예상된다.


◆엇갈리는 주장=권씨는 이날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서 자신의 배후로 홍씨를 지목했다.

4년전 경찰서 과장(경정)으로 퇴직한 권씨는 법무사 사무소에 다니는 아들을 둔 채모씨를 통해 지난달 7일 신공덕동사무소에서 이 전 시장의 맏형 상은씨와 부인 김윤옥씨,처남 김재정씨 등 3명의 초본을 부정하게 발급받은 혐의를 받고 있는 인물.

권씨는 영장심사에서 "이 전 시장이 아닌 다른 대선 주자의 지지자는 맞지만 특정 캠프에 가입했거나 당적을 갖고 있지는 않다"며 "지인인 홍모씨의 부탁을 받아 알아봐줬을 뿐 정치적인 문제가 될 줄은 전혀 몰랐다"고 주장했다.

홍씨는 연세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박 전 대표 캠프에서 대외협력위원회 전문가네트워크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에 대해 홍씨는 이날 연합뉴스 기자와 만나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그는 주민등록초본 발급은 권씨의 자발적인 행동에 의한 것이지 자신의 부탁 때문에 이뤄진 것이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그는 "2∼3개월 전쯤 소개로 만난 권씨가 어느 날 먼저 '이 전 시장의 주민등록초본이 필요하지 않느냐'고 말해왔고 '나는 너무 위험한 짓을 하지 말라.위법이 아니냐'고 만류했다"고 경위를 설명했다.

그는 "그 일을 잊어버리고 있었는데,어느 날 권씨가 이 전 시장 부인 김윤옥씨와 큰형 상은씨,처남 김재정씨의 초본을 가지고 왔더라"면서 "그래서 일단 보기는 했지만 별 내용이 없다고 생각해서 그냥 책상에 둔 채 잊어버렸다"고 말했다.

홍씨는 "이후 1주일쯤 뒤 권씨가 원본을 달라고 해서 다시 줬다"면서 "그게 전부"라고 설명했다.

홍씨는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함정에 걸린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박 캠프 반응=이 전 시장 측 장광근 대변인은 구두논평에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바로 입장을 내는 것은 좀 그렇다"면서도 "만약 박 전 대표 캠프의 막후 실세가 개입된 것이 사실이라면 참으로 경악할 일"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캠프 관계자는 "이 모든 게 사실이라면 캠프 차원에서는 물론 캠프 수장인 박 전 대표가 직접 나서 해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표 측 홍사덕 공동선대위원장은 "홍씨의 전언에 따르면 권씨가 자청한 일이라고는 하지만 불법으로 발급된 문건을 가져왔을 때 홍씨가 즉각 야단치고 바로잡지 못한 것은 우리 캠프가 그동안 추구해온 정도 정치에 어긋나는 일"이라며 "캠프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위원장으로서 당원과 국민 앞에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김인식/노경목/박민제 기자 sskis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