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 측도 속았다는 느낌이 들겁니다.

사실 우리가 낸 상품 양허안은 제가 생각해도 좀 낮은 개방 수준이에요."(한국 협상단 관계자)

벨기에 브뤼셀 EU 본부에서 16일(현지시간) 시작된 한·EU FTA 2차 협상.서울에서 열렸던 1차 협상에서 내내 부드러운 자세로 일관했던 EU 태도가 돌변했다.

자신들의 양허안을 "후퇴시키겠다"는 극한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EU는 2차 협상 직전 자동차 LCD-TV 등 일부를 제외한 거의 모든 품목에 대한 관세를 3년 내 철폐하겠다는 최초 양허안을 내놓았다.

양국이 1차 협상 때 "빠른 타결을 위해 최종안에 근접한 최초 양허안을 내자"고 합의한 데 따른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양허안은 달랐다.

농수산물뿐 아니라 기계 화학제품에서 섬유 도자기에 이르기까지 관세를 10년 이상에 걸쳐 서서히 낮춰가겠다는 안을 내놓았을 뿐이다.

자동차는 관세 철폐 시점을 무려 7년으로 늦췄다.

한국이 이런 양허안을 낸 것은 업계를 관할하는 산업자원부의 몸사리기에서 시작됐다는 것이 대다수의 견해다.

산자부는 "EU가 자동차 관세의 경우 한국의 비관세장벽과 연계해 없애겠다고 한 만큼 이를 방어할 수단이 필요하다","EU의 제조업은 미국보다 강해 국내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등의 이유를 내세웠다.

여기엔 통상협상의 주도권을 놓고 외교통상부와 벌이는 해묵은 갈등도 한 몫했다.

그러나 한·EU FTA 협상은 '개방을 통한 더 큰 성장'을 위해 우리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결과다.

내 줄 것은 웬만큼 내줘야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특히 한·EU FTA는 미국보다 더 큰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FTA다.

부처 간 자존심 싸움과 이기주의로 협상은 처음부터 난관에 처했다.

이런 상태에선 EU 측에 자동차 관세 철폐를 앞당기라고 요구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조차 자동차 관세의 조기 철폐를 주장하지 않았습니까.

벤츠 BMW 좀 더 사주고 국산차를 훨씬 더 많이 팔자고 시작한 게 FTA인데 말입니다.

무슨 이유에서 협상을 질질 끌려고 하는지…."

협상을 지켜보는 업계 관계자들은 답답할 뿐이다.

브뤼셀(벨기에)=김현석 경제부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