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만삭스,메릴린치와 붙어서 이길 수 있냐고요? 미국에서라면 몰라도 중국에선 두렵지 않아요."

상하이 푸둥지구에 위치한 현대증권 상하이사무소 사무실에서 만난 최정희 과장의 말은 뜻밖이다.

최 과장은 전 세계 금융시장을 쥐락펴락하는 회사들일지라도 중국에서는 한번 해볼 만하다고 말했다.

그는 "글로벌 기업에 비해 자금력 등 모든 면에서 부족하지만 니치마켓을 공략한다면 중국을 캐시카우로 만들 수 있다"고 자신했다.

외환위기 때 외국 메이저 금융회사로부터 '배웠던' 신흥시장 침투 경험을 중국에 적용한다면 승산이 있다는 얘기였다.


중국 진출 한국 금융회사들이 신발끈을 조여 매고 있다.

확대일로의 중국 머니마켓을 공략하기 위해서다.

중국의 금융 비즈니스 환경은 좋다.

중국은 작년 말 외국은행에 런민비(人民幣) 영업을 허용하면서 은행업의 마지막 빗장을 풀었다.

부동산과 주식은 단순한 개인 간의 거래 대상이 아니라 펀드 등 금융회사의 다양한 상품으로 진화 중이다.

주식시장에서는 외국인의 투자 한도가 확대되고 있고,차이나 달러의 해외 투자도 본격화할 태세다.

중국 공략의 타깃은 니치마켓이다.

부동산 부문에서 이미 시작됐다.

상하이 푸둥신구 메이위안(梅園)가.

증권 선물 황금 다이아몬드 등 4대 거래소가 모여 있는 금융 중심지다.

올 9월 완공 예정인 이곳의 33층짜리 건물의 주인은 한국의 미래에셋이다.

작년 6월 2869억원에 사들였다.

미래에셋은 지난달 부동산 펀드를 이용,상하이 중심부 인민광장 인근 화쉬궈지(華旭國際)빌딩을 1320억원에 매입하기도 했다.

두 건물을 중국 부동산·금융시장 공략의 근거지로 삼겠다는 게 이 회사의 구상이다.

부동산을 통한 프로젝트 파이낸싱도 활발하다.

현대증권은 낡은 건물을 현대식 호텔로 리모델링하는 작업을 일본의 한 호텔 체인과 함께 시작했다.

한투증권과 우리은행은 각각 쿤산시의 연호산업단지개발과 아파트 건설에 대한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주관했다.

물론 모건스탠리 등이 부동산 전담회사를 만들어 직접 개발하거나,아파트 단지를 통째로 사서 임대하는 등 큰손으로 군림하고 있는 것에는 비할 바가 못된다.

그러나 "열세인 자금력은 알짜 사업을 골라 하는 게릴라식 전법으로 커버할 수 있다."(최영진 한화증권 상하이사무소장).

증권사들이 중국 부실채권(NPL)에 눈을 돌리는 것도 같은 전략이다.

현대증권은 2005년 중국 농업은행의 장시(江西)성 부실채권을 사들인 데 이어 지난달 중국 둥팡(東方)자산관리공사와 쓰촨성 지역 부실채권 인수를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영역을 서부로 넓혔다.

굿모닝신한증권도 신한은행과 공동으로 중국 부실채권 2800억원어치를 인수했다.

이를 위해 지난 3월 부실채권 전문가인 잭 로드맨 전 언스트앤영 상무를 영입하는 등 의욕을 보이고 있다.

특히 증권회사들은 중국이 해외 투자에 본격 나서는 데 주목하고 있다.

현대증권 최 과장은 "중국 정부가 외환보유액 관리를 위해 해외 투자를 적극 독려하고 있고,한국 증시는 차이나 머니가 들어올 대상 중 하나"라며 "중국의 투자자금을 한국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좋은 수익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은행에서도 힘찬 함성이 들린다.

중국 진출 은행들은 그동안의 지점 형태를 접고 법인화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중국 정부가 소매금융 시장을 개방하면서 조건으로 내건 법인 설립을 이행하기 위해서다.

우리은행 신한은행 등이 법인 설립 신청서를 제출했다.

허가가 떨어지면 곧바로 영업전선에 뛰어들기 위해 마케팅 전략을 다듬고 있다.

이들 은행의 전략은 "자신들이 가진 장점을 최대한 살린다"는 것.김대식 우리은행 중국법인장은 "네트워크와 자금력이 달리는 단점은 타깃 마케팅과 속도 그리고 친절이라는 우리 고유의 장점으로 극복할 것"이라고 말한다.

마케팅 타깃은 중국 부유층이다.

이를 위해 프라이빗 뱅킹 사업을 준비 중이다.

김범수 우리은행 베이징지점장은 "부자들의 개인비서가 될 각오"라며 "이를 위해 중국은행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직원을 스카우트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부유층 자녀를 직원으로 채용,고소득층의 커뮤니티를 창출한다는 전략도 세웠다.

해외 보험회사로는 처음으로 중국에 법인을 설립한 삼성화재는 매출의 절대 비중을 차지하는 삼성 계열사의 의존도를 줄이고 다국적 기업으로 고객을 확대하기 위한 본격적인 영업전략을 마련 중이다.

이 밖에 두산그룹 현대차그룹이 할부금융회사 설립을 서두르는 등 비 금융권 기업들도 중국 금융시장을 노크하고 있다.

런민비 영업 개방,해외 투자 확대,주식과 부동산 시장 활성화 등으로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중국 금융시장에서의 비즈니스 기회를 잡기 위해 한국 금융회사들이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상하이·베이징=한우덕 기자/조주현 특파원 woody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