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좋은 회사가 전자 인력 떠안기도

업무없는 '~팀' 발령내 퇴직 유도 … 사측 "고통분담 차원"



삼성전자 반도체총괄사업부에 근무하는 A과장.그는 지난달 초 소속팀 상사로부터 갑작스런 통보를 받았다.

'경영혁신팀'이란 조직에 배치됐다는 것.각 부서에서 차출한 10여명의 직원들로 구성된 이 팀은 명칭만 보면 위기탈출의 해법을 찾는 조직이다.

하지만 A과장에게 주어진 업무는 별 다른 게 없었다.

A과장은 "동료들이 구조조정 대상에 오른 것 아니냐고 얘기했을 때 믿질 않았는데,지금은 회사를 그만두라는 무언의 요구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조만간 희망퇴직을 신청할 계획이다.

최근 강도높은 인사.조직개편을 실시하며 희망퇴직 신청을 받고 있는 삼성전자에 '무인도' 괴담이 나돌고 있다.

'무인도'란 회사에서 인력 구조조정 대상에 오른 직원들을 발령내는 임시 조직을 가리키는 말로 사원들 사이에서 마치 암호처럼 통용되고 있다.

업무 및 조직을 축소하거나 통폐합하는 과정에서 구조조정 대상에 오른 직원들을 기존 업무에서 떼어내 배치하는 조직이다.

'○○생산성혁신'이나 '△△개선팀',□□경영혁신팀' 등이 무인도에 해당되는 팀들로 알려졌다.

무인도는 특별한 역할이나 업무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삼성전자 직원들 사이에서 이 조직에 배치된다는 사실은 곧 '퇴직권고를 받았다'는 의미로 통한다.

이 때문에 직원들은 '무인도 배치→희망퇴직'이 공식으로 굳어지지 않을까 잔뜩 걱정하는 분위기다.

실제 지난 6월부터 인력 구조조정에 돌입한 삼성전자 각 총괄에는 이런 형태의 '무인도' 조직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디지털미디어총괄의 경우 지난달 100~150명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는 과정에서 무인도 조직에 배치된 고참 부ㆍ차장급들이 자의반 타의반으로 퇴직의사를 밝히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반도체총괄도 무인도 조직을 만들어 이달 말부터 본격적인 희망퇴직을 받을 예정으로 알려졌다.

당초 반도체총괄은 고참 부ㆍ차장급을 대상으로 200여명의 희망퇴직을 받는다는 계획이었으나,최근 황창규 반도체총괄 사장이 겸직하던 메모리사업부장에 조수인 부사장이 발탁되는 등의 조직개편과 맞물려 구조조정의 폭도 확대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관계자는 "반도체총괄의 경우 구조조정 대상을 부ㆍ차장급에 이어 평직원들까지로 확대했다"며 "총괄 단위가 아닌 각 사업부 팀 단위에서 무인도 조직을 통해 퇴직을 권고하고 있다"고 전했다.

'무인도식 구조조정'과 함께 비(非)전자 계열사로 발령내는 '밀어내기식' 구조조정도 함께 실시되고 있다.

각 총괄의 부ㆍ차장급 중 관리직과 영업ㆍ마케팅 인력들을 실적이 좋은 관계사로 보내는 작업이 이미 완료됐거나 추가로 진행되고 있다.

실제 삼성물산의 경우 현재까지 삼성전자 부ㆍ차장급 십여명을 받아들였다.

삼성엔지니어링도 이미 실적부진을 겪고 있는 삼성SDI와 삼성코닝에서 수십 명의 부ㆍ차장급 인력을 배치받은 데 이어 삼성전자에서도 인력을 받아들일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 관계자는 "전자에서 다른 계열사로 옮겨가는 인력 중에는 핵심인재도 상당수 포함돼 있지만 상당수가 업무능력이 떨어지는 이들"이라며 "(이들 회사들이) 전자 인력을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지만,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삼성전자가 어려울 때 도와야 한다는 고통분담 차원에서 대부분 받아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