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금융사기? … 전화받기 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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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기업 H사에서 근무하는 이모씨(39)는 최근 출근하자마자 사무실로 걸려온 전화 한 통을 받고 어리둥절했다.
"○○은행 고객센터입니다. 고객님께서 저희 은행 카드로 사용하신 금액 중 ○○○만원이 연체됐습니다. 상담을 원하시면 9번을 눌러주십시오"라는 녹음 멘트가 흘러나왔다.
잘 못 걸려온 전화라고 생각해 끊었지만 이씨는 10여분 후 같은 전화를 또 받았다.
결국 '혹시 내가 카드 사용 내역을 기억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싶어 9번을 누른 뒤 이씨는 은행 여직원과 경찰 수사관,금감원 직원 등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사람들로부터 차례로 전화를 받은 다음 '보안'을 이유로 현금지급기 앞으로 가라는 얘기까지 들었다.
그제서야 이씨는 올초 '전화금융사기'로 피해를 입었다던 동료 직원의 얘기가 떠오르며 '아 바로 이거구나' 싶어 얼른 전화를 끊었다.
#2.자영업자 한모씨(55)는 아예 사기를 당한 경우다.
법원 직원과 경찰관,금감원 직원이라는 사람들이 전화를 걸어와 "당신 명의의 계좌가 범죄에 연루됐다"며 한씨에게 신분증 분실 여부,주민번호,휴대폰 번호 등 개인 정보와 계좌번호 등을 물어봤다.
한씨가 질문에 말려 곧이곧대로 답하자 이들은 "계좌 정보가 노출된 것 같으니 계좌 보호를 위해 '안전코드'를 설정해 주겠다"며 한씨를 현금지급기 앞으로 유인했다.
한씨가 이들이 지시하는 대로 현금인출기 버튼을 누르다 보니 어느새 1500만원의 돈이 이들이 만든 '대포통장'으로 이체됐다.
이른바 '보이스 피싱(voice phishing)'으로 불리는 '전화금융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현직 지방법원장조차도 이 수법에 말려 6000만원을 사기당할 정도로 범죄 기법도 지능화하고 있다.
보이스 피싱에 의한 피해가 확산되자 급기야 정부까지 대책 마련에 나섰다.
정부는 18일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에서 전화금융사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현금지급기의 인출 및 이체한도를 현재보다 하향 조정하고 △외국인의 예금계좌 개설 요건을 강화하는 등의 제도 개선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대책에는 △사기에 이용되는 대포통장(제3자의 명의도용 통장)의 양도행위 처벌근거 마련 △'사기 자금 지급정지제도'도입 및 운영 △주의 계좌 등록과 자금 흐름에 대한 특별관리 등도 포함됐다.
국무조정실과 경찰청 등에 따르면 보이스 피싱 범죄는 지난해 6월부터 국내에서 본격 발생해 올 6월까지 총 3990건이 일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피해액도 371억원에 달한다.
이 중 2325건이 적발돼 795명이 사법당국에 의해 검거됐다.
이들 중에는 한국인이 403명으로 가장 많았지만 주로 대포통장 개설에 명의를 빌려주거나 국내 모집책 등의 '종범' 역할이 대부분이며,중국인(190명)과 대만인(189명)들이 '주범'이라는 게 정부 당국의 설명이다.
경찰청 등 관련 기관은 범죄 수법과 유형이 점차 다양화·전문화되고 있어 피해자가 앞으로도 속출할 수 있는 만큼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우선 공공기관을 사칭하거나 녹음된 멘트로 시작되는 전화,개인정보 및 계좌정보를 상세히 물어볼 때,현금지급기 조작을 지시하는 경우 등은 의심해 봐야 한다는 것.또 유선전화나 휴대폰으로 이런 전화를 받은 경우에는 △전화를 건 사람에게 오히려 소속과 이름,전화번호를 되물어보거나 △경찰청(국번없이 1379) 및 금감원(02-3786-8576) 등 관계당국에 반드시 확인을 하고 △자녀 납치 협박을 받았거나 돈을 입금한 경우에는 즉시 경찰에 신고하라고 조언했다.
문혜정 기자 selenm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