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택거래 중단, 월세 부담 못이겨 '이탈'
매물 늘고 권리금 하락...'노다지'가 '무덤'으로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서 중개업소를 운영했던 김준성(가명.48) 사장은 지난해 말 남양주시로 가게를 옮겼다.

최근 아파트 거래가 끊기면서 계속되는 적자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압구정 대로변 중개업소의 경우 상가 월 임대료가 350만원 선이고, 인건비를 감안하면 한 달에 1천만원은 벌어야 본전이지만 돈을 버는 달보다 까먹는 달이 더 많았다는 게 김 사장의 설명이다.

그는 "몇 달씩 거래 한 건 성사하기도 힘들다보니 경력 10년차인 나도 어쩔수 없었다"며 "남양주시는 개별 거래 금액은 작아도 토지가 심심치 않게 팔리고 있어 압구정보다 벌이가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

강남권 중개업소들이 '강남'을 떠나고 있다.

주택 매매거래 침체 현상이 장기화되면서 과거 공인중개사들의 '노다지'였던 강남이 '무덤'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 강남 중개업소도 '빈곤' = 18일 부동산 중개업계에 따르면 최근 강남권에서 중개업소 매물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서초구 잠원동의 경우 전체 중개업소의 10-15% 정도가 매물로 나와 있다.

이 지역 아파트 1층 상가는 보증금 3천만원에 월세가 300만원 선(실평수 24㎡ 기준)으로 압구정동 못지 않다.

잠원동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불경기가 지속되다보니 월세도 못내는 중개업소가 적지 않다"며 "자신이 주고 들어온 권리금의 절반 혹은 3분의 2 이상을 포기하고 나가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강남구 압구정동의 경우 현대아파트 앞 압구정로변에 위치한 중개업소 60-70개의 가운데 6개월이면 서너군데씩 물갈이가 된다.

압구정동의 한 중개업소 사장은 "간판은 그대로지만 주인은 수시로 바뀌는 셈"이라며 "권리금도 과거 1억5천만원까지 받았지만 지금은 절반도 받기 힘들 지경"이라고 말했다.

새 아파트 입주 때 쏟아져나오는 매물을 노리는 '입주 장사'도 옛말이다.

집주인들은 양도세 부담 등을 이유로 팔지를 않고, 매수자들은 가격 하락을 기대해 섣불리 달려들지 않는 것이다.

지난해 2월 입주한 3천2가구의 강남구 도곡 렉슬 아파트의 경우 현재 단지내 중개업소 40여곳중 5개 정도가 비어 있다.

Y부동산 관계자는 "매물은 한정돼 있고 경쟁은 치열하다보니 1년 계약을 했던 중개업소는 월세(500만-600만원) 부담을 못이겨 만기가 되자마자 떠났다"며 "남아 있는 부동산도 거래가 없어 가만히 앉아 돈만 까먹고 있는 신세"라고 말했다.

송파구 잠실 레이크팰리스의 입주 효과를 기대했던 주공 단지 인근 중개업소도 별로 재미를 못봤다.

그나마 급매물이 많았던 강남권 재건축 단지의 중개업소만 연초 체면치레를 했을 정도다.

잠실 Y공인 사장은 "잠실도 재건축이 시작되면서 많은 중개업소가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폐업했다"며 "생계를 위해 다른 지방의 땅이나 건물 등을 중개한다며 돌아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 주택거래 감소가 큰 타격 = 이러한 현상은 극심한 주택거래량 감소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강남구의 아파트 거래량은 지난해 상반기 월 480-1천480여건, 9월-12월에는 월 1천-1천700건이 거래됐으나 올 들어 5월까지는 월 300-950건으로 급감했다.

현재 강남구청에 등록된 정식 중개업소는 총 2천150개로 올 들어 매달 3-7개 점포당 한 곳은 거래를 한 건도 못한 셈이다.

서초구도 지난해 1-5월 월 760-1천150건이 팔렸으나 올 들어서는 월 339-940건으로, 송파구는 지난해 같은 기간 613-1천184건에서 올해 월 339-946건으로 각각 감소했다.

하지만 여전히 중개업소 등록 건수는 폐업 건수보다 많다.

중개업소 포화상태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공인중개사는 최소 1만명 이상 꾸준히 배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강남구청에 따르면 올들어 이달 16일까지 중개업소 개설(등록) 신고 건수는 500여건으로 폐업건수(400여건)보다 많다.

송파구도 현재까지 폐업 275건, 등록 337건, 서초구 역시 폐업 270건, 등록 303건으로 등록 건수가 더 많다.

이 때문에 전임자가 떠난 점포는 대체로 갓 시험에 합격한 신참 중개사들로 채워지지만 오래 가진 못한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 양소순 팀장은 "최근 폐업을 한 중개업소 중에는 개업한 지 1년이 안된 신생 업소가 상당수를 차지한다"며 "동네에서 잔뼈가 굵은 중개업소도 못버티는 판에 노하우가 없는 신참들이 발붙이기는 더욱 힘들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중개업소들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잦은 단속에 불만을 토로한다.

송파구의 S공인 사장은 "세금 강화, 대출 규제, 주택거래신고 등으로 거래는 꽁꽁 묶어놓고, 툭하면 중개업소만 단속해 영업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며 "주택 거래가 끊기면 이사업체, 인테리어 업체 등 다른 연관산업도 공멸하는 만큼 거래를 살리는 정책을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 부동산 전문가는 "중개업소가 증가하면서 발생한 비정상적인 집값 상승, 거래 혼탁 등의 부작용도 전혀 무시할 수는 없다"며 "정부의 거래 활성화 정책과 동시에 중개업소의 자정 노력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서미숙 기자 sm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