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배고픈지 볼이 옴폭 파여 있는,

심연을 알 수 없는 밥그릇 같은 모습으로

밤새 달그락 달그락대는 달

밥 먹듯이 이력서를 쓰는 시절에

-이승희 '저녁을 굶은 달을 본 적이 있다' 전문



배고픔도 이 정도 되면 어떤 경지에 이르렀다고 할 것이다.

꿈과 환상의 상징인 달에서 허기를 생각해 내다니.배 고프면 잠이 안오기에 밤새 하늘에 떠 있는 달에서 밥그릇 달그락 대는 소리를 듣는다.

안쓰럽다 못해 비장하다.

생활이 풍요로워졌다고는 해도 여전히 먹고 사는게 간단치 않다.

세계 빈곤인구가 25억명에 이른다고 했던가.

배고픔이 현실인 사람들에겐 어떤 거창한 명분이나 정교한 논리도 사치일 뿐이다.

우리가 즐기고 있는 이 위태로운 풍요가 영원히 계속된다는 보장도없다.

그동안 세상에 신세만 지고 살아왔으니까 하루 세끼 식사만이라도 적당히 담아서 남기지 말고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가끔 해본다.

어디에선가 굶는 사람이 있는 한 먹을 것을 버리는 것은 죄악일 테니까.

이정환 문화부장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