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디가문 家巨' 첫 인도 女대통령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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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티바 파틸 라자스탄주지사 당선...간디家와 45년간 끈끈한 인연
인도에서 사상 처음으로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
인도 선거관리위원회는 21일(현지시간) 집권 연정 후보인 프라티바 파틸 라자스탄주 주지사(73)가 제13대 인도 대통령으로 당선됐다고 발표했다.
선관위는 대통령 선출을 위한 선거인단 투표 결과 집권 연정인 통일진보연합(UPA) 후보 파틸이 인도국민당(BJP) 주도의 야권 연합인 전국민주연합(NDA)의 B S 세가와트 부통령을누르고 당선됐다고 밝혔다.
여성 차별이 심한 인도 사회에서 여성 대통령이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외신들은 평가했다.
파틸 대통령 당선자는 정치 명문가인 간디 가문의 대표적인 가신(家臣)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인도 서부 마하라슈트라주 출신으로 대학 재학 중이던 1962년 국민회의당 후보로 주의회 의원 선거에서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다.
그 뒤 1985년까지 주의회 의원으로 활동했고 재선을 거쳐 주의회 장관 등을 지냈다.
이어 1985년 연방 정부의 상원의원에 당선돼 중앙 정계 진출과 동시에 상원부의장 타이틀을 달았고,1990년 총선에선 정치적 텃밭이자 남편이 시장을 지낸 마하라슈트라주 암라바티 선거구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또 5년간의 하원 임기를 마친 파틸은 이후 8년간 정치적 공백기가 있었지만 2004년 라자스탄주의 첫 여성 주지사 자리에 올라 화려하게 정계에 복귀했다.
파틸은 45년간의 정치 인생에서 단 한 번도 국민회의당이라는 간판을 떼지 않았고,특히 국민회의당을 주도해온 간디 가문과는 가족과 같은 끈끈한 인연을 맺어왔다.
그는 1970년대 중반 당시 인디라 간디 총리 정부가 국민들의 지지를 잃어 국민회의당이 총선에서 참패한 와중에도 국민회의당의 깃발을 계속 지켰다.
당시 인디라 간디 총리의 부엌일까지 도맡았다는 일화가 나올 정도로 끈끈했던 파틸과 간디 가문의 관계는 라지브 간디를 거쳐 현재 국민회의당 당수인 소냐 간디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이처럼 파틸의 정치 인생 곳곳에서 간디 가문의 '후광'을 적잖게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이번 대선에서도 소냐 간디의 적극적인 추천을 받아 대선 후보로 나설 수 있었다.
파틸은 정치적 결단력이 강하고 사회활동에 적극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라자스탄 주지사 재직 시절 그는 주 의회가 승인한 개종 금지 법안이 양심과 신앙의 자유를 제한한다며 거부권을 행사하는 소신을 보이기도 했다.
또 파틸은 이번 대선에서 야권과 정치적 거래가 한창이던 제3의 정치 세력인 통일국가진보연맹(UNPA)을 설득,선거 불참 선언을 이끌어내는 등 정치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
인도에서 사상 처음으로 여성 대통령이 탄생했다.
인도 선거관리위원회는 21일(현지시간) 집권 연정 후보인 프라티바 파틸 라자스탄주 주지사(73)가 제13대 인도 대통령으로 당선됐다고 발표했다.
선관위는 대통령 선출을 위한 선거인단 투표 결과 집권 연정인 통일진보연합(UPA) 후보 파틸이 인도국민당(BJP) 주도의 야권 연합인 전국민주연합(NDA)의 B S 세가와트 부통령을누르고 당선됐다고 밝혔다.
여성 차별이 심한 인도 사회에서 여성 대통령이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외신들은 평가했다.
파틸 대통령 당선자는 정치 명문가인 간디 가문의 대표적인 가신(家臣)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인도 서부 마하라슈트라주 출신으로 대학 재학 중이던 1962년 국민회의당 후보로 주의회 의원 선거에서 당선돼 정계에 입문했다.
그 뒤 1985년까지 주의회 의원으로 활동했고 재선을 거쳐 주의회 장관 등을 지냈다.
이어 1985년 연방 정부의 상원의원에 당선돼 중앙 정계 진출과 동시에 상원부의장 타이틀을 달았고,1990년 총선에선 정치적 텃밭이자 남편이 시장을 지낸 마하라슈트라주 암라바티 선거구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또 5년간의 하원 임기를 마친 파틸은 이후 8년간 정치적 공백기가 있었지만 2004년 라자스탄주의 첫 여성 주지사 자리에 올라 화려하게 정계에 복귀했다.
파틸은 45년간의 정치 인생에서 단 한 번도 국민회의당이라는 간판을 떼지 않았고,특히 국민회의당을 주도해온 간디 가문과는 가족과 같은 끈끈한 인연을 맺어왔다.
그는 1970년대 중반 당시 인디라 간디 총리 정부가 국민들의 지지를 잃어 국민회의당이 총선에서 참패한 와중에도 국민회의당의 깃발을 계속 지켰다.
당시 인디라 간디 총리의 부엌일까지 도맡았다는 일화가 나올 정도로 끈끈했던 파틸과 간디 가문의 관계는 라지브 간디를 거쳐 현재 국민회의당 당수인 소냐 간디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이처럼 파틸의 정치 인생 곳곳에서 간디 가문의 '후광'을 적잖게 발견할 수 있다.
그는 이번 대선에서도 소냐 간디의 적극적인 추천을 받아 대선 후보로 나설 수 있었다.
파틸은 정치적 결단력이 강하고 사회활동에 적극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라자스탄 주지사 재직 시절 그는 주 의회가 승인한 개종 금지 법안이 양심과 신앙의 자유를 제한한다며 거부권을 행사하는 소신을 보이기도 했다.
또 파틸은 이번 대선에서 야권과 정치적 거래가 한창이던 제3의 정치 세력인 통일국가진보연맹(UNPA)을 설득,선거 불참 선언을 이끌어내는 등 정치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